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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불편해져” “남산 명물 될 것” … 남산 실개천 조성 뜨거운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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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8일 서울 남산 북측 순환로에서 산책로의 폭을 줄이고 실개천을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다. [박태희 기자]

8일 오후 2시 서울 남산 북측순환로 입구. 공사 중임을 알리는 안내판 옆으로 붉은색 드럼통과 2m 높이 반투명 펜스가 산책로를 따라 늘어서 있다. ‘남산 물관리 사업, 실개천 조성’이라고 적힌 펜스 안쪽에서는 땅을 파내는 공사가 한창이다.

실개천 조성 사업은 서울시가 188억원을 들여 북측 산책로~한옥마을 1.1㎞, 장충지구~북측 산책로 1.5㎞ 등 모두 2.6㎞에 걸쳐 물길을 만드는 사업이다. 지난해 10월 말 시작된 공사는 4월 벚꽃 개화에 맞춰 마무리될 예정이다. 서울시 권기욱 물관리정책과장은 “옛날 남산에는 선비들이 갓끈을 빨았다고 할 정도로 맑은 물이 흘렀지만 지금은 대규모 터널건설과 주변 지역 개발로 계곡수가 땅속으로 스며들어 물줄기가 사라졌다”며 “실개천을 되살리면 시민들은 물소리를 들으며 남산을 산책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사가 끝나면 실개천에 남산 한옥마을과 필동에 설치돼 있는 홍수방지용 빗물 저류조의 빗물과 계곡수가 흐르게 된다는 것이 서울시의 설명이다.

그러나 물길을 위해 산책로 폭을 줄이는 것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시는 폭 8m의 북측 순환로를 1.5m가량 줄인 자리에 폭 70㎝의 물길을 만들고 식물을 심을 계획이다.

김수형(42·중구 신당동)씨는 “벚꽃 철엔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인파가 몰리는 곳인데 사람 다니기에도 부족한 길을 줄여 굳이 물길을 낼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남산을 자주 찾는 시각장애인들도 반대하는 입장이다. 유정하(64) 한국시각장애인마라톤협회장은 “시각장애 마라토너들이 이곳에서 매주 두 번씩 7년째 훈련을 해왔다”며 “차량과 자전거가 다니지 않아 훈련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는데 개천이 생긴다면 도우미 없이는 불안해 훈련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반면 강신욱(38·약수동)씨는 “청계천을 만들었지만 예상보다 교통 혼잡은 적고 도심에 없던 냇물을 갖게 됐다”며 “남산에 실개천이 생기면 산책로가 더 쾌적하고 운치 있게 변할 것 같아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보행자 불편을 최소한으로 줄인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임춘근 물관리운영팀장은 “시각장애인들과 협의해 도로와 물길 사이에 촉감이 확연히 다른 경계석을 폭 30㎝ 이상으로 설치하기로 했다”며 “예상되는 불편 사항을 추가로 파악해 공사에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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