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개혁초심으로 돌아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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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대중(金大中)정부 2기가 신뢰의 상실이라는 커다란 시련에 봉착하고 있다.

金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권력형 비리와 정경유착은 과거의 유물이 됐다고 선언했지만 현실은 그런 것들이 여전히 권력 내에 횡행하고 있다는 심증을 주고 있다.

약삭빠른 처세로 도덕성 문제를 불러일으킨 송자(宋梓)교육부장관은 전격적으로 갈아치웠지만 박상희(朴相熙)중소기협중앙회장의 얄팍한 처신, 참신하지 못한 내각 구성은 여전히 이 정부의 큰 부담으로 남아 있다.

지금 한창 물의가 일고 있는 한빛은행 대출사건은 몇달 전까지 청와대 행정관으로 재임하던 인물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고 여권 실세(實勢)장관의 관련 의혹까지 일고 있다.

선거비를 축소 신고토록 교사하고 검찰과 선관위에 압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는 사건도 그냥 넘어가기 어렵게 됐다.

야당의 장외투쟁도 문제지만 돈선거에 대한 의혹을 규명하지 않고서는 이 정부가 주장하고 있는 개혁의 정통성 그 자체가 흔들리는 일이다.

졸속 추진된 의약분업은 정권의 골칫거리가 돼 가고 있고 황폐화한 교육현장은 이 정권의 실패한 교육개혁의 산 증거로 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는 지금 오로지 남북협상에만 매달리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지만 그것조차 신중한 속도조절 없이 그저 이벤트의 정략적 효과에만 집착하는 느낌이다.

이런 일들은 이미 누차 지적했듯이 확실한 플랜없는 개혁 시늉이 빚어낸 예정된 파탄이며 권력 내부의 도덕적 해이와 권력남용과 같은 부식(腐蝕)현상이 시작됐기 때문이 아닌가 우려된다.

이렇듯 정부가 불신받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이 정권은 근원적인 처방은 할 생각않고 '밀리면 끝장' 이라며 레임덕 현상의 조기 가시화에만 신경쓰는 것 같다.

이런 대응은 국민을 생각하는 정치가 아니라 권력 그 자체의 고수에 급급한 권력주의적 발상일 뿐이다.

'강한 정부, 강한 여당' 은 검찰권이나 조세권을 앞세운 엄포정치로 되는 일이 아니다. 상생(相生)정치 운운하는 레토릭도 이제는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이런 사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국민의 합의를 얻어내고 국민의 신뢰를 얻는 정공법(正攻法)으로 나가야 한다고 본다.

한빛은행 사건만 해도 과연 문제의 실세장관이 개입했는지를 밝히는 수준까지 검찰 수사가 진행돼 모든 의혹이 말끔히 씻어지도록 해야 하며, 선거비 축소 은폐 사건도 특검을 임명해 정부가 진상규명에 앞장서는 자세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는 여론조작이나 여론대책만으로 사태를 끝까지 왜곡하고 감출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가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 위에 환란(換亂)을 극복해 나가던 정권 출범 때의 개혁 초심(初心)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될 만큼 정부의 신뢰가 위기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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