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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타 지역서 반발할라 … 하루에 자료 24번 고치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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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기업들이 세종시 입주 의사를 밝히기 시작한 건 지난해 11월 17일이었다고 한다.

당시 정운찬 국무총리는 전경련 회장단과의 만찬에서 “토지를 싼값에 공급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만찬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으로 전경련 회장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 13명이 참석했으나 공교롭게도 입주 명단에 포함된 삼성·한화 등 4개 그룹 회장들은 그 자리에 없었다.

정부 측에 따르면 기업들은 땅값, 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세제 지원 순으로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땅값 문제는 의외의 공간에서 풀렸다. 정부 관계자는 “가장 먼저 유치가 결정된 카이스트의 서남표 총장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원형지 공급 얘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이후 기업에 미개발 상태의 원형지를 싸게 공급하는 방안이 마련됐다. 정부 관계자들은 “상당수 기업이 논의 과정에서 인센티브 내용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고도 토로했다.

유치 논의 초반에 삼성은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고, 오히려 LG가 더 얘기가 진척됐다고 한다. 그러나 인센티브가 공론화된 뒤 삼성은 적극적으로 돌아서고, LG는 신중한 태도로 바뀌었다. 정부 관계자는 “LG의 신중한 기업문화가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삼성은 처음에 바이오시밀러 분야를 검토했으나 충북·대구의 첨단복합단지 분야와 겹쳐 제외됐다. 세종시가 다른 지역의 기업들을 빨아들인다는 ‘블랙홀’ 논란을 우려해서다. 웅진은 땅을 “5만 평(16만5000㎡)만 쓰겠다”고 했으나 정부가 “그렇게 작으면 안 받겠다”고 해 투자 규모가 늘었다. 웅진 유치에는 충남 공주가 고향인 윤석금 회장과 정 총리의 친분이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11월 “알 만한 기업이 마음을 굳히고 있다”는 정 총리의 발언은 웅진을 가리킨 것이었다고 한다. 한화는 신수종 사업에 투자한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정부와 논의해 온 경우다. 이미 착공 준비까지 끝낸 상태다.

롯데는 4곳 중 가장 늦게 참여가 결정됐다. 11월 중순 “맥주 공장 건립을 검토 중”이라는 소문이 나왔으나 정부 측엔 의사를 전달하지 않은 시점이었고, 발표 10여일 전부터야 논의가 활기를 띠었다고 한다.

정부는 막판까지 “다른 지역의 반발을 살 만한 사업”을 제외하느라고 진땀을 뺐다. 한 관계자는 “지난 7일 하루에만 자료를 24번 고쳤다”고 말했다. 이번에 선정된 기업들의 경우 투자 협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토지 환수조치 등이 이뤄질 수 있다. 법 개정이 무산돼도 투자 계획은 취소된다. 조원동 세종시 기획단장은 다른 기업의 추가 입주에 대해 “땅이 많지 않아 어렵다”고 말했다.

김선하·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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