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이광석 '나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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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나무는 외로울 때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

외로움보다 더 낮은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나무는 기쁠 때 기쁨을 표내지 않는다

기쁨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나무는 사랑할 때 사랑을 드러내지 않는다

사랑보다 더 깊은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나무는 미울 때 미움을 탓하지 않는다

미움보다 더 얕은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항상 제자리에 있어

높고 낮음이, 깊고 얕음이

물처럼 있는 그대로인 저 넉넉한 온유

- 이광석(65) '나무' 중

더도 덜도 말고 나무만 같았으면 좋겠다. 외로움도 타지 않고, 사랑도 드러내지 않고, 미움도 탓하지 않는 것이 나무라면, 시인은 참 좋겠다.

나무 보고 배우고, 산 보고 배우고, 물 보고 배우고, 혼자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이렇게 일러주어서 오늘 아침 우리는 한 그루 나무가 되어 넉넉한 온유를 누리는 것이 아닌가. 나무 같은 시인이 여기 있구나.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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