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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을 부르는 학업계획서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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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선발 및 시험에 있어서 응시자는 ‘어떻게 하면 뽑힐까’를 고민하지만 선발을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잘 뽑을까’를 고민한다. 응시자의 입장에서는 선발하는 사람의 고민 같은 것이야 그저 하는 말쯤으로 생각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발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잘 뽑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일 것이다. 입학사정관 또한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어떻게 하면 좋은 학생을 뽑을까’ 하는 어려운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말이 있다.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며 학생의 적성과 진로, 최종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해보았다면 이제 입학사정관의 생각에 대해 고민해볼 차례이다.

입학사정관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우리가 입학사정관이나 학교 측 관계자가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어떤 학생들을 뽑았을 때 입시를 잘 치렀다고 생각할까? 입시를 치를 때 무엇을 고려하게 될까? 꼭 입시가 아니더라도 ‘사람을 뽑는 일’에서 고려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현재 우수한지’ 그리고 ‘앞으로 우수할지’.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입시를 준비하고 전형을 치르는 동안 학교 성적과 모의고사 점수와 스펙 등 자신이 현재 우수함을 증명하는 일에만 몰두한다. 그러나 누군가를 선발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지원자들 중 누가 현재 재능과 열정을 가졌는지’는 물론 ‘선발 이후 누가 가장 잘 하게 될지’도 알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바로 이러한 필요에 의해 대학 측에서 요구하는 것이 ‘학업계획서’이다. 특히 학업계획서는 수험생이 대학에 다니는 동안 실행하게 될 구체적인 계획에 대한 것이고, 대학에서 제공하는 교육에 직결된 것이기에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합격 이후가 중요하다

다른 나라 학생들은 전체 교육과정 중 대학 때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데, 우리나라 학생들은 대학 때 제일 공부를 안 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 원인은,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어느 대학 어느 과에 들어가고 싶다’고 꿈꾸기만 하고 ‘어느 대학 어느 과에서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떤 연구를 하고 싶다’고 계획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이제까지 수험생들의 고민은 ‘합격’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면 “○○대학교 도시행정학과에 가고 싶어요.”라든지 “○○대학교 도시행정학과에 가서 공무원이 될래요.”라고 말하는 학생은 있지만 “○○대학교 도시행정학과에서 지방자치와 도시재정을 중점으로 공부하고 싶어요. 그 후 지역도시를 세계적으로 키우는 공무원이 될래요.”라고 말하는 학생은 드물다. 수험생의 열정이 대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육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학교에 들어가는 것에서 멈춰 버리기에 우리나라의 대졸 인구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전문 인력의 수가 세계 최고는 아닌 것이다. 학생을 선발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잠재력이 있어서 선발한 학생이라도 고등학교의 교육환경과 다른 대학 생활에 적응만 하다가 아까운 청춘을 허송세월하는 학생이라면 대학의 발전에 기여하는 ‘인재’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생을 선발할 때 그들은 합격 이후를 고려하게 된다.

대부분의 대학이 입학사정관 도입 전형에서 1단계로 학생의 생활기록부(교과)와 스펙(비교과)관련 서류, 그리고 자기소개서와 학업계획서를 받는다. 그리고 2단계에서 심층면접을 치른다. 1단계에서 학업계획서를 요구하지 않는 대학이라도 자기소개서를 쓸 때, 지원동기와 함께 대학 진학 후 학업 계획을 밝히는 것이 좋다. 그리고 2단계에서 면접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심층면접 문제와 함께 학생의 합격 후 학업계획을 묻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입학사정관들이 말하는 주요 평가 기준에는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평소에 대학 진학 이후를 고민해보지 않은 학생은 자기소개서에서도, 학업계획서에서도, 면접에서도 자신이 가진 열정의 ‘진정성’을 어필하기 힘들 것이다.

[등록금이 아깝지 않은 학업계획을 세우는 TIP]

①목표 학과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얻어라

수험생들은 의외로 대학에 개설된 학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다. 예를 들어 학생은 막연히 ‘인간의 마음에 대해 알고 싶어서’ 심리학과에 지원하지만, 심리학의 수많은 연구들은 직관이나 상식을 넘어서서 과학적인 관찰과 연구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에 대한 관심에 앞서 과학적 소양과 생물학적 연구가 필요하다. 심리테스트나 독심술에서 연상되는 막연한 이미지를 가지고 지원한 학생의 경우, 또는 인문학적 공부만을 기대하고 지원한 경우, 예상과 다른 수업 내용에 뒤늦게야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음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목표하는 학과에서는 무엇을 배우는지, 그 학문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전문분야는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아야 구체적인 학업계획을 세울 수 있다.

②목표 대학의 커리큘럼을 살펴라

비슷한 것을 전공하는 학과라도 학교에 따라 커리큘럼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가령, 같은 영어 관련 학과라도 대학에 따라 ‘영문학’의 수업에 강한 대학이 있고, ‘영어학’에 치중하는 대학이 있으며 ‘영미문화’나 ‘통번역’을 중요하게 배우는 대학이 있다. 목표 대학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학과안내’ 항목에서 개설과목과 커리큘럼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아라.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이 먼저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문학’ 인지 ‘어학’인지 ‘문화’인지, 모두 인지를 고민하고 자신의 최종 커리어에 부합하는 대략의 계획이라도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통적으로 문학을 중시하여 영문학 수업이 반이 넘는 학과에 지원해 ‘영문학 소설 한 편 읽은 적은 없지만 토익 점수는 높다’는 점을 강조하게 되거나, 취업을 위해 영어 회화 수업을 중시하는 대학에 ‘셰익스피어 희곡을 연구하고 싶다’는 학업계획서를 제출하게 될 수도 있다.

해당 대학의 입시를 담당하는 전문 입학사정관이나 학과 교수들의 입장에서는, 미지(未知)의 세계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수험생도 높이 평가하겠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앞날을 계획하는 자세를 갖고 비싼 등록금의 가치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워갈 수 있는 준비된 수험생을 더욱 높이 평가할 것이다.

③일관성 있는 학업계획서를 써라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은 내용뿐 아니라 해당학과에 지원하게 된 동기와 학업 외에 노력할 사항, 동아리 활동, 졸업 후 계획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자기소개서나 학업계획서에 일관성 있게 기술해야 한다. 대학은 기본적으로 학문을 연구하는 곳이고, 학문을 통해 해당분야의 전문가를 배출하는 것이 목표인 곳이므로 위에서 나열한 사항들이 대학의 이러한 목표에 부합해야 입학사정관을 사로잡을 수 있다. 해당학과에 지원한 동기와 대학에서 공부할 내용이 어울리지 않거나, 대학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학생의 졸업 후 계획이 무관하다면 지원자의 매력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④세밀한 목표를 설정하라

대학에서 공부한 것을 통해 이루고 싶은 자신의 최종목표를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좋은 학업계획서를 쓰기 위해서는 중간 중간 이루고자 하는 세밀한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1,2학년 때까지 호텔관광학에 관한 기초를 닦은 후 2학년 겨울 방학 때는 호텔 아르바이트를 통해 실무를 체험해보고 싶다’거나 ‘지원 대학에 마련된 교환 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인도의 대학에서 한 학기를 보내며 우리나라 이외의 IT 강국의 수업을 들어볼 생각이다’는 계획과 같이 구체적이고 세밀한 계획은 입학사정관에게 원하는 분야에 대한 수험생의 열정을 확인시켜 줄 것이다.

학생들은 학원에 등록할 때 수업담당 선생님과 교재, 같이 공부하는 학생의 수준과 진도, 수업 커리큘럼 등 많은 것을 꼼꼼하게 따져보고 등록을 결정한다. 그러나 대학에 지원할 때는 계획 없이 그저 점수에 맞춰서 또는 학교의 이름만 보고 지원하는 학생들이 많다. 대학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를 보낼 곳이고 자신의 이력이 되는 곳이며 자신의 전문분야를 이루어 줄 곳이기에 적어도 이보다는 더 꼼꼼하게 정보를 수집한 상태에서 지원해야 한다. 학업계획을 세우는 일은 ‘합격’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청춘과 인생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계획 없이 준비하는 대학생활은 입학사정관제의 합격이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고가의 졸업장을 장기할부로 구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유미나 칼럼니스트 lucidmin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