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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L, 1만3000명 정리해고 … 국내외 노선 47개 폐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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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앞으로 일본항공(JAL)의 이름은 ‘일본정부항공’으로 부를 만하다. 일본 정부가 사실상 파산 상태에 빠진 JAL의 경영 정상화를 주도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JAL의 대외 신인도 하락에 따른 혼란부터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운항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기내식 제공회사에 대한 결제와 연간 400억 엔에 이르는 마일리지 포인트 이행 서비스는 보호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부 외국 공항에서는 연료비와 영공 통과료 등 운항 경비를 선불로 내라고 할 가능성도 커 경영 정상화가 순탄치만은 않다. 일본 정부는 “현금 지불을 요구하며, 연료를 공급해주지 않으면 치안이 나쁜 지역에서 일본 국민의 발이 묶여 버릴 수도 있다”며 최악의 사태를 상정하고 경영 정상화를 추진할 예정이다.

◆가득한 난기류=경영 정상화를 위해 투입되는 돈은 모두 1조1000억 엔. 법정관리를 주도하는 기업재생기구가 출자 등을 통해 4000억 엔을 지원하고, 일본정책투자은행이 2000억 엔, 기업재생기구의 보증으로 채권단이 추가로 5000억 엔을 협조 융자할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1조1000억 엔을 모두 보증한다. 거액의 공적자금 투입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따라서 국민 불만을 설득하는 것도 과제다. 일본 정부는 이를 의식해 과감한 수술을 계획하고 있다. 채권단에는 3500억 엔 규모의 채무 탕감을 요청하고, 부실화의 원인으로 지목된 방만한 경영 체질도 개혁하기로 했다. 우선 직원 1만3000명을 정리해고하고 채산성이 떨어지는 국내외 노선 47개도 폐쇄할 방침이다. 경영 정상화를 주도하는 기업재생기구는 JAL의 주식을 전량 감자할 방침이어서 주식은 휴지조각이 된다. 감자 후에는 기업재생기구가 3000억 엔 규모를 출자해 최대주주가 된다.

JAL의 새로운 최고경영자(CEO)가 될 법정관리 관재인으로는 살아 있는 ‘경영의 신’으로 존경받는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교세라 명예회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전했다.

◆어쩌다 ‘불시착’했나=일본 경제 번영의 상징인 JAL은 1987년 민영화됐다. 그러나 시늉만 낸 민영화가 ‘불시착’의 계기가 됐다. 일본 정부는 JAL에 낙하산 자리를 만들어 관료를 내려 보내면서 통제와 보호를 병행했다. 이 덕분에 외국 항공사 점유율 제한과 저가항공 규제 등 정책적인 특혜를 받아 외형상으로는 계속 1위 자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JAL의 채무 초과액은 최대 8400억 엔에 달한다.

JAL 내부에 구축된 ‘노조 왕국’은 불시착의 결정적 원인이 됐다. JAL엔 기장조합·승무원조합 등 무려 8개 노조가 난립하고 있다. 경영혁신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기내 스튜어디스 출신 승무원은 현재 매달 45만 엔(약 550만원)의 연금을 받을 만큼 사내복지가 두툼하다. 반면 최근에는 경영 악화로 스튜어디스도 계약직으로 뽑아왔다. 이들은 월 20만 엔의 급여를 받고, 주먹밥으로 저녁을 때우는 등 최소한의 생활을 하고 있다. 수익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퇴직자에겐 고액 연금을 지급하는 방만한 지출구조, 시급히 수술해야 할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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