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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구운 대뱃살, 오마참치의 백미였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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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호 04면

오마참치잡이 취재와 참치축제 견학이 끝나고 잠깐의 여유가 생기자 허 화백이 연방 시간을 확인하며 조바심을 낸다. 저녁 일정으로 참치요리 시식이 잡혀 있는 터라 소풍 떠나기 전날 아이들처럼 마음이 동한 모양이다.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이자 세계적인 미식의 경지에 올려놓은 참치 요리의 진수를, 검은 다이아몬드라는 불리는 오마참치로 맛 보는 행운을 잡았으니 그런 기대감과 조바심도 무리는 아니리라. 풍부한 살점과 고소하고 부드러운 지방의 맛, 그리고 다양한 부위를 이용한 다채로운 참치요리는 상상 그 이상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생선요리의 결정판으로 유명하다. 수평선 너머로 뉘엇뉘엇 해가 기울자 허 화백의 한마디가 떨어진다. “이키마쇼!!(いきましょう·갑시다)”

일본 가다 - 아오모리 세 번째 이야기, 참치<2> 코스요리

냉동참치와는 다른 신선한 지방 맛
1960년 개업한 ‘하마즈시(濱壽司)’는 1년 365일 신선한 오마참치를 맛 볼 수 있는 참치요리 전문점이다. 비록 작은 항구의 한적한 골목에 자리를 잡고 있어 일반인에게 평범한 식당으로 비춰지지만, 오마참치의 감동을 현장에서 느끼고 싶은 매니어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 지역 명소이기도 하다.

“참치의 모든 것을 느끼러 왔다”며 허 화백이 호기롭게 인사를 건네자 뚝심 좋게 생긴 2대 사장이자 주방장 이토(伊藤)가 빙그레 웃으며 코스 요리를 추천한다. 국내에서도 육회·찌개·덮밥 등 다양한 참치요리를 접할 수 있지만 이토가 내놓은 코스 요리는 초밥·회·스테이크를 제외하고는 모두 특수 부위를 이용해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일단 참치눈으로 끓인 찌개 요리가 눈길을 끈다. 참치볼살 튀김은 오동통하면서도 폭신한 느낌이 압권이며, 깨와 식초로 버무린 껍질은 느끼한 입맛을 잡아주는 데 더 없이 좋다. 여기에 목구멍 부위 구이와 다섯 종류의 양념을 섞은 된장으로 맛을 낸 위, 그리고 뼈 사이의 살코기를 삶아 낸 요리 역시 최소한의 양념 사용으로 재료 특유의 개성을 한껏 뽐낸다.

코스 요리의 정점은 초밥. 5일간 저온숙성을 통해 맛이 최고의 정점에 오른 오마참치의 아카미(あかみ·속살), 주토로(中とろ·중뱃살), 오토로 (大とろ·대뱃살) 부위만 사용한다. 이미 특수 부위 요리에 홀딱 반한 허 화백이 본격적인 취재를 위해 열심히 초밥을 쥐고 있는 이토 앞에 자리를 잡는다. 오마참치 맛의 특징이 궁금하다고 하니 “지방 맛”이라는 짧고 굵은 대답이 돌아온다.

원양 냉동참치의 지방은 끈적한 반면 오마참치의 지방은 신선한 쇠고기 육즙처럼 고소한 풍미가 입안에 꽉 찬다는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미’라고, 갓 쥔 초밥 세 점을 국보급 도자기 다루듯 조심스레 올려 놓자 허 화백이 기다렸다는 듯 한입에 쏙 넣는다. 오마참치가 두툼하게 올려진 초밥은 명성대로 최상급 침대에서나 느껴보는 안락한 촉감과 함께 싱그러운 지방이 퍼져 나와 봄눈 녹 듯 입안에서 사라져 버린다.

“언제부터 이런 맛있는 참치를 일본 혼자 먹었냐며?” 시기 어린 투로 물어보자 “아주 아주 오래전부터”라며 이토가 빙그레 웃는다. 기실 일본에서 참치 식용의 역사는 조몬시대(BC 3세기께)부터로, 『고사기(古事記)』나 『만엽집(萬葉集)』 등 다양한 문헌에 등장한 것으로 보아 예전부터 꽤 인기 있던 식재료였음을 알 수 있다.

‘하마즈시’에서의 대미를 장식한 요리는 선홍빛 살색과 맑고 투명한 흰색 지방이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오토로를 불에 살짝 구운 아부리도로(あぶりトロ)다. ‘아부리’는 굽는다는 뜻으로 오토로는 열을 가하면 더욱 맛이 좋아져 미식가 사이에서 참치초밥의 백미로 꼽힌다.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아부리도로를 천천히 음미하던 허 화백이 “이제 한국에서 참치는 다 먹었다”며 책임지라는 농담을 건네자 “비싼 오마참치를 다 팔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밤잠을 설치는데 손님이 한 명이라도 늘면 좋으니 자주 오십시오”라며 호탕한 웃음과 함께 행복한 저녁시간을 마무리한다.

김과 참기름 장은 이제 그만
국내에서는 바늘과 실처럼 참치회에 김과 참기름장이 함께하지만 이는 오히려 참치의 참맛을 방해하는 주범이다. 참치는 풍부한 살점과 함께 고소한 지방맛으로 먹는 생선이므로 고추냉이를 푼 간장이 제격이다. 살얼음이 낀 참치 역시 지양해야 할 부분이다. 더불어 참치요리는 속살인 아카미부터 지방 함량이 높은 주토로·오토로 순으로 먹어야 한다는 법칙이 불문율처럼 통하지만 이토의 말에 의하면 먹는 순서를 굳이 정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개인의 기호와 취향에 따라 부위에 상관없이 즐겁게 즐기는 것이 중요한데, 단 한 부위를 먹고 난 후에는 반드시 절인 생강이나 마늘로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는 것은 필수라고 한다.

참고로 일본어 마구로(まぐろ)는 검은눈동자(目黑)에서 유래한 말이며 우리말로는 다랑어가 맞다. 참치란 단어는 원양어업 종사자들이 마구로를 잡으러 간다며 허가를 요구하자 정부 관리들이 마구로의 마(ま)를 참 진(眞)으로 착각, 서류에 참치라고 기재하면서 말이 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해석대로라면 진치가 맞지만 어감이 좋지 않아 참치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일본자치체국제화협회 클레어(Clair)와 한진관광의 후원으로 2년간 일본을 방문해 다양한 요리와 온천 문화, 자연을 경험하고 그 체험을 독자와 나눌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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