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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업 발굴엔 독불장군 없어 … 삼성이라도 정부 도움 필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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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호 24면

신성장 산업 발굴에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임형규(사진) 전 삼성전자 사장에게 답을 구해봤다. 임 전 사장은 현재 삼성전자의 신사업 관련 자문을 하면서 지식경제부의 ‘지식경제 연구개발(R&D) 시스템 혁신위원회’에서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삼성의 바이오시밀러 사업 등은 “말할 입장에 있지 않다”고 밝혔다.

임형규 지식경제R&D시스템 혁신위원회 민간 공동위원장

-삼성전자처럼 큰 기업이 신성장 사업을 발굴할 때 정부가 할 역할이 있는가.
“큰 기업도 늘 하던 사업이 아닌 분야에선 지식이 한정적이다. 그래서 신사업 발굴이 쉽지 않다. 누가 무슨 사업이 좋다고 얘기해도 모르니까 선뜻 믿고 시작하기가 어렵다. 삼성 입장에선 일단 규모가 어느 정도 돼야 한다. 1조, 10조원 규모로 갈 수 있는 사업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새로운 영역 어디서 큰 사업이 될 줄 알겠는가. 전체를 놓고 경중을 가리고 가능성이 큰 것을 잡아내야 한다. 지식경제부가 핵심 태스크포스를 맡아달라고 했을 때 흔쾌히 응한 이유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장기적으로, 또 넓은 지식 범위에서 그려볼 수 있다. 각 기업이 돈 내서 사업화할 것을 공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가 신성장 산업 발굴과 육성 분야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플래시메모리 사업은 1990년대 초반 시작했는데 그 씨앗을 키워서 2000년대에 꽃을 피웠다. 그게 간단히 되는 게 아니다. 초창기에 R&D를 하다가 시제품을 만들어 보고, 그러다가 사업 조직을 키우고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신사업이 쉬웠다. 우리 기업들이 조선·통신·반도체를 시작할 때는 뒤따라오는 나라가 없었다. 선진국에 존재하는 사업 중에서 우리가 붙어서 할 만한 것을 찾아서 했다. 중화학 분야도 뻔히 보였고 그걸 했다. 지금은 그런 단계가 아니다. 선진국에도 우리가 따라갈 사업이 별로 없다. 우리나라의 어떤 사람, 어떤 계층도 간단히 신성장 동력에 손대기가 쉽지 않다. 각 그룹에서 열심히 찾아보지만 쉽게 찾기 어렵다. 따라서 국가적인 브레인을 동원해서 찾고, R&D도 수행해서 미래가치가 있는 것을 골라 내 키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90년 이후엔 정부가 민간 기업의 일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견해가 많았는데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얘기로 들린다.
“기업들은 90년대부터 존재하는 산업을 세계 일류화하는 데 초점을 뒀다. 2005년까지 그렇게 왔다. 정부가 그걸 도와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미 알려진 분야는 각자 잘하면 되니까. 마침내 전자·자동차 등 엔지니어링 비즈니스는 세계 일류 수준이 됐다. 항공기 정도가 아니다. 원전도 이번에 수출하지 않았나. 엔지니어링 비즈니스로는 (일류 수준에) 거의 다 왔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들은 10~20년이 지나면 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다. 그 다음 사업은 한 기업이 찾는다고 툭 튀어나오는 것은 아니다. 훨씬 큰 틀에서 인재 풀을 활용해 찾아야 한다. 기존의 사업으로는 고용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

-기존 사업에서도 신성장 동력이 있는 것이 아닌가.
“LED TV를 개발해 치고 나가면서 한국 TV 사업이 세계 1등이 됐다. 다른 분야에서도 이런 기술이 나와야 한다. 산업의 경쟁 틀을 바꾸는 핵심 기술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 기존에 없는 사업 중에서, 또 국내 수준이 떨어지는 분야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야 한다. 산기협 최고기술경영인(CTO) 모임에 나가보면 다른 기업들의 CTO들도 신사업 발굴의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기업들은 기존 사업이 아닌 불확실한 분야에는 돈을 잘 쓰지 않으려 한다. 거기에 정부의 역할이 있다. 연구원들도 자신의 연구가 세상에 미칠 파장, 즉 임팩트 시나리오를 그리면서 연구에 임해야 한다. 기초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도 얘기해 보면 임팩트 시나리오에 무척 강한 것을 알 수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R&D도 기술의 시장성이나 파급 효과를 더 많이 보고 판단해야 한다. 새로운 민·관 협력(Neo PPP, public-private partnership)의 틀을 구축해야 한다.”



KAIST 전자공학 석사 출신으로 1976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R&D와 신사업 발굴 분야에 몸담았다. 84년엔 미국 플로리다대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5년부터는 종합기술원장, 2007년 겸임으로 전략기획실 신사업팀장, 2008년 5월부터는 지난해 말까지는 신사업팀장을 맡아 바이오시밀러 등 신사업을 개척했다. 5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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