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총리-재무상 엇박자 … 엔화값 큰 폭 ‘널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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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과 8일 일본 외환시장은 오락가락했다. 달러화에 대한 엔화 가치는 7일 오전만 해도 달러당 92엔대 초반이었던 것이 낮 들어 갑자기 93엔대 중반으로 떨어졌다. 최근 4개월 사이 최저 수준으로 급락한 것이다.

이날 재무상에 취임한 간 나오토(菅直人·사진) 부총리가 회견에서 “일본 경제계에서는 (수출경쟁력 확보를 위해) 달러당 95엔대 중반까지 가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고 말한 직후였다. 재무상이 환율 목표치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며 사실상의 구두개입을 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그는 한발 더 나갔다. “환율이 적절한 수준이 되도록 일본은행과의 연대를 포함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외환시장 개입 의지를 강하게 밝힌 것이다. 그 영향으로 7일 밤 시작된 뉴욕·런던 외환시장에서도 엔화 가치는 93엔대 후반으로 밀렸다.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은 2004년 3월 16일 이후 근 6년 동안 외환시장에 개입하지 않았다.

8일 오전엔 상황이 반전됐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가 “정부가 가타부타 환율을 언급해선 안 된다”며 재무상의 전날 발언을 꾸짖었다. 엔화는 다시 강세로 전환하는 듯했다.

하지만 직후 간 재무상이 “환율은 시장이 정하는 것이란 총리의 말은 지당하지만 경제계의 희망도 충분히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필요할 때 환율에 뭔가의 행동을 취하는 것은 재무상의 권한”이라고 맞받아치면서 엔화는 다시 약세로 돌아섰다.

시장은 뭔가 불안하다는 반응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8일 “간 재무상이 일본 경제에 도움이 되라고 한 이야기일지 모르나 환율이란 상대방이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일이) 후텐마 기지 문제로 티격태격하는 상황에서 경제 분야에서도 환율이 쟁점이 되면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경고도 덧붙였다.

간 재무상에 대한 우려는 환율에 있어서만이 아니다.

대장성 관료 출신인 후지이 야스히사(藤井裕久) 전 재무상은 재정 건전성을 가장 중시했다. 올 4월 시작되는 내년도 예산안의 핵심으로 신규 국채 발행을 44조 엔 이내로 억제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치인인 간 신임 재무상은 경기회복이 최우선이다. 이에 따라 외신들은 “간 재무상이 재정 악화 속에서도 국채 발행을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공산이 크다”고 우려했다. 장기 금리의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파이낸셜 타임스(7일자)는 “간 재무상의 등장으로 민주당은 자민당 정권처럼 재정 지출에 의존하는 ‘감각 마비 상태’에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반면 일각에선 경기 확대를 위해 돈을 확 풀어야 한다는 연립여당 국민신당의 주장에 대해 간 재무상이 “재정 출동을 많이 할수록 좋다는 건 ‘공룡시대’적 발상”이라고 일축했던 것을 들면서 “차기 총리를 노리는 그가 무리를 하진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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