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부패대전] 上. "국운 건 사회악 청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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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중국이 부패.매춘과의 전쟁에 국운을 걸었다. 사회기강을 바로잡지 않으면 공산당이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다며 사정(司正)의 강도를 날로 높이고 있다.

지도자의 비서실장이나 부총리 등 고위층이 조사를 받다 자살했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 정도로 이번 사정바람은 전례없이 매섭다. 사회악 척결에 열중하고 있는 중국의 모습을 두 차례로 나눠 싣는다.

요즘 베이징(北京)의 군사박물관 앞에는 관람객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매일 1만명 이상이 몰리고 있으며 이미 10만장이 넘는 입장권이 예매됐다. '베이징 경제범죄 척결과 예방 전람회' 를 보러오는 군중이다.

이 전람회는 1996년부터 최근까지 발생한 각종 경제범죄 70건을 다루고 있다. 4천1백만위안(약 50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7월 말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 전(前)부위원장인 청커지에(成克杰)사건을 다룬 전시는 길이가 18m나 된다.

'몸은 높은 관직에 이르렀어도 부패.타락해 거액의 뇌물수수로 사형을 선고받다' 라는 큼직한 설명문이 보는 이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다.

25일부터 베이징에서 개봉될 영화 '생과 사의 선택(生死抉擇)' 도 장사진을 예고하고 있다.중심지인 다화(大華)영화관 한곳에서만 이미 1만여장이 예매됐다.

상하이(上海)영화제작소가 만든 이 작품은 반(反)부패가 소재다. 출세를 도와준 선배와 부인이 부패 원흉임을 발견한 어느 시장의 인간적 고민과 과감한 부패척결 과정을 그린 장핑(張平)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장쩌민(江澤民)주석이 "공복(公僕)의 교재로 삼아 마땅하다" 고 칭찬했다는 이 영화는 이미 상하이에서 1천1백만명 관객을 모았다.

반부패를 다룬 전람회.영화가 왜 장안의 화제일까.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라는 게 베이징 시민들의 설명이다. 급속한 시장경제 추구 과정에서 직접 겪고 보아온 주위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베이징의 늦여름은 치열한 '부패 타도' 의 열기에 휩싸이고 있다. 중국 당국은 20일 '간부 인사제도 개혁심화 요강' 을 발표했다. 간부의 임용.선발과정에서 사람을 잘못 뽑은 간부에게도 책임을 묻겠다는 게 골자다. 부하의 부패에 연대책임을 지우겠다는 것이다.

21일에는 중국 심계서(審計署.감사원)의 리진화(李金華)심계장이 새로운 반부패 정책을 발표했다. 퇴직을 앞둔 장관이나 성장 등 고위관리들의 재산 실태를 철저히 조사해 부정.부패에 연루됐는지를 밝히겠다는 내용이다.

98년 3월 주룽지(朱鎔基)총리가 취임하면서 선언했던 '부패와의 전쟁' 이 갈수록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현장이다.

부패 세력의 반격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지난달 15일 새벽 광둥(廣東)성 산터우(汕頭)시 영빈관에서 의문의 화재가 발생했다.

불이 난 2층은 산터우시의 부패를 조사하기 위해 출장 온 중앙기율검사위(대검찰청) 관리들이 묵고 있었으며, 이 화재로 중앙기율검사위에 파견 온 광둥성 기율검사위 관리 두명 등 다섯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국은 누전으로 인한 화재라고 했지만 홍콩 언론들은 "전전긍긍하던 부패 세력이 방화했을지도 모른다" 고 의심했다.

朱총리가 취임 당시 부패와 전쟁을 시작하면서 "내것을 포함해 1백개 관을 준비하라" 고 비장하게 말한 이유가 실감나는 대목이다.

부패 행위는 대부분 공산당원인 고위관리들이 저지르는 것이어서 라오바이싱(老百姓.일반 국민)들의 불만은 공산당 통치 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로 이어질 수가 있다.

즉 부패가 만연한 것은 중국 공산당의 실정 때문이라는 인식이 국민들에게 확산될 수 있는 것이다. 중국 당국이 부패와의 싸움을 필사적으로 벌이고 있는 이유도, 이 싸움에 중국 공산당의 운명이 걸린 이유도 모두 여기에 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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