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상봉] 정부 장기수 북송 묘안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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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마무리된 18일 오후 정부는 판문점을 통해 북송(北送)대상 비전향 장기수 62명의 명단을 보냈다. 지난 6월 말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 적십자회담 합의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북한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비전향 장기수 북송문제가 원만히 해결돼야 면회소 설치 등 이산가족 문제가 제대로 풀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9월 초 전원송환' 이란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문제도 많다.

◇ 정부 고민.논란〓이산가족 상봉확대 등에 대해 북측의 약속을 끌어내지 못한 상황에서 비전향 장기수를 모두 송환해야 한다는데 정부의 부담이 있다.

특히 납북자.국군포로는 거론조차 되지 않는데, 남파간첩은 열렬한 환영 속에 평양으로 돌아가는 불균형을 국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할지도 고민거리다.

북한은 내친 김에 북송 때 장기수들의 가족동반 문제까지 제기해 정부를 더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조선적십자회는 15일 "(비전향 장기수 가운데)가족들을 데리고 올 것을 바라는 사람들?있다" 며 "이들을 모두 수용하겠다" 고 밝혔다.

노골적 동반북송 요구는 아니더라도 10여명의 가족동반 희망자의 요구를 들어달라는 압박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이산가족과 납북자.국군포로 문제의 해결없이 비전향 장기수에게만 영주(永住)와 가족 재결합까지 허용하는 것은 협상카드를 정부 스스로 버리는 것" 이란 비판도 나온다.

6.25 때 국군포로가 된 뒤 43년 만인 1994년 북을 탈출한 조창호(趙昌浩)씨는 "정부가 상호주의 차원에서 비전향 장기수와 생사가 확인된 3백43명의 국군포로를 같은 숫자로 교환해야 한다" 고 호소했다.

하지만 정부는 자칫 북한측 심기를 건드리다간 이산가족 해결 구도는 물론 남북 정상회담 이후의 남북화해 무드가 흐트러질 것을 걱정해 소극적인 입장이다.

◇ 비전향 장기수 범위〓대개 6.25를 전후해 남파간첩 등으로 활동하다 검거돼 장기 복역한 사람들을 말한다.

북한은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에 대한 신념과 의리를 지킨 애국자" 라면서 송환에 공을 들이고 있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도 "이들을 데려오기 위한 투쟁을 계속 벌여야 한다" 고 강조한다는 것.

정부는 이들이 이미 모두 출소한 상태라 '비전향 장기수' 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비전향 장기수란 용어를 쓰다 95년 10월부터는 '출소 공산주의자' 로 바꾸고, 지난해 2월에는 '출소 남파간첩 및 공안관련 사범' 이란 표현을 쓰는 등 정부 내에서도 용어조차 제대로 정립이 안된 상태다.

정부 당국자는 18일 "전향 장기수들까지 평양행을 희망하고, 북한도 이들을 수용한다는 입장이라 '비전향' 의 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불가피한 상황" 이라고 설명했다.

이 판에 한종호(83)씨처럼 "정부가 북송포기 각서를 요구했다" 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서는 등 잡음이 일고 있다.

◇ 송환 절차〓북한은 넘겨 받은 명단과 '실태조사 자료' 를 검토, 최종 명단을 확정한다.

하지만 북측이 "과거를 불문하고 모두 수용하겠다" 고 밝혀 62명 전원이 평양에 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송환은 판문점 또는 항공로를 이용키로 적십자회담에서 합의했지만 항공편이 유력하다.

그밖의 세부절차는 93년 3월 비전향 장기수 송환 1호인 이인모(李仁模)씨 경우를 따를 예정이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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