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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 메달 포상금 어디에 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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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유승민.문의제.정지현.장미란(왼쪽부터)이 지난달 22일 국제구호단체인 월드비전 복지관 어린이들의 ‘1일 국가대표’ 행사에 참가해 윗몸일으키기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태릉선수촌=최승식 기자

아테네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팔자 고쳤네"다. 억원대의 포상금과 연금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수천만원에서 수백만원이다. 그래서 '돈방석'이라는 표현은 좀 무리다. 그들은 그 돈을 어디에다 쓸까. 돈을 잘 모르는 아마추어여서일까. 일단 허투루 쓰는 것 같지는 않다. 장학금을 내놓겠다는 소식도 들린다.

가장 큰돈을 받은 탁구 남자단식 우승자 유승민(22). 소속사인 삼성생명에서 1억원, 대한탁구협회의 5000만원에다 대한체육회 포상금 2만달러(약 2200만원), 그리고 매달 100만원씩의 연금도 받는다. 그중 일부가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가게 됐다. '유승민 장학금'이다. 그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남자복식에서 금메달을 딴 뒤부터 강원도에 사는 어린이 두명에게 매달 지원금을 보내주고 있다. "상금이 더 두둑해졌으니 지원대상도 더 늘리겠다"는 얘기다. "국민의 사랑 덕분에 좋은 성적을 거뒀으니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배드민턴 남자복식의 김동문.하태권도 장학금을 내놓을 생각이다. 포상금 일부를 갹출하기로 했다. 대상자는 초.중.고교의 배드민턴 선수 한명씩. 선발방식과 액수는 미정이다. 그러고 나서 하태권(29)은 포상금 대부분을 내년에 입주하는 아파트 중도금으로 쓸 예정. 2세 딸을 둔 그는 "은행에서 대출받아야 할 형편이었다"면서 "드디어 오붓한 내 집을 마련하게 됐다"고 좋아한다. 총각인 김동문(29)은 나머지를 결혼자금이나 유학자금(현재 박사과정)으로 쓸 생각이다.

금메달을 딴 뒤 기자회견에서 "(상금을) 조금만 빼고 부모님께 드리겠다"던 순둥이 총각 정지현(21.레슬링). (그는 얼마나 뗄 거냐는 질문에 처음엔 "5만원"이라고 했다가 웃음이 터지자 "500만원"이라고 고쳐 말했었다.) 그는 1억4400만원의 상금 중 정말로 500만원을 뗐다. "이것저것 사고 싶은 것 사고 쓰고 싶은 데 썼다"고 한다. 그리고 남은 돈은 부모에게 "아파트 하나 사달라"며 맡겼다.

남자양궁 박경모(29)는 선물을 풀었다. 인천 계양구청 소속인 그는 인천과 고향인 충북의 양궁선수들에게 1만원짜리 시계 300개를 만들어 돌렸다. 또 모교(충북이원초.이원중.충북상고)에 120만원씩 도서를 구입해 기증했다. 부모와 동생들(남자 한명, 여자 두명)에게도 용돈을 듬뿍 줬다.

뒤후리기 KO승으로 금메달을 딴 태권도 문대성(28)은 포상금.격려금 등을 합쳐 1억5000여만원이 생겼다. 남성용 화장품과 음료수 광고 모델 제의도 잇따른다. 해운업을 하던 아버지(문광춘.65)의 사업 실패로 어려서부터 가난하게 자란 그는 "부모님께 깨끗한 집을 사드리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현재 그의 부모는 큰누나와 함께 지하층에서 산다. 협심증을 앓는 어머니(오은자.63)의 치료비도 보태야 한다. 그동안 적자로 운영해온 도장(문대성 태권스쿨.경기도 시흥) 때문에 생긴 빚도 갚아야 한다. 올림픽 이후 그의 도장에 원생이 몰린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실은 등록 문의가 오히려 평소보다 뜸하다. "다른 도장은 30~40%가 늘었다는데…. 아마도 사람이 몰릴 거라고 지레짐작들을 했나 봐요." 대학원까지 다니느라 학비 마련하는 데에도 빠듯했던 그는 어쨌거나 이제 한시름을 놓았다.

유도 이원희(23)는 포상금 전액을 은행에 넣었다. 부모가 관리하기로 했다. 대신 그는 감독.코치.동료선수들과 함께 최근 시원하게 뒤풀이 행사를 했다.

체중 감량 때문에 그동안 마음껏 먹지 못한 고기를 실컷 먹고 2차로 술자리를 가졌다. 워낙 말술들이다 보니 술값만 자그마치 700만원이 넘었다고 했다. 하지만 비용의 대부분을 코칭스태프가 부담, 이원희에게 돈 쓸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

왼쪽 갈비뼈에 금이 간 채로 복싱에서 동메달을 따낸 김정주(23)는 1000만원이 채 안 되는 포상금을 결혼자금으로 쓰겠다고 했다.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뒤 받은 1000만원을 큰누나 결혼자금으로 줬던 그다. 두 사람의 결혼비용을 주먹으로 만들어낸 셈이다.

여자양궁 박성현(21).윤미진(21).이성진(19)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부모님께 돈 관리를 맡겼다"고 입을 모았다. 올림픽에서 돌아오자마자 회장기 양궁대회에 출전했고, 전국체전도 곧 이어져 훈련 말고는 딴생각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스포츠부 <sports1@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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