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엿보기] 남한과 뜻달라 혼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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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분단의 세월이 길었어도 혈육의 정은 말이 필요없었다. 그러나 정작 말이 필요했을 때 엄청나게 달라진 일상용어는 분단의 골을 느끼게 했다.

16일 남북한 이산가족들은 눈물을 씻고 가슴 속에 담았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지만 중간중간 생소한 용어들이 튀어나오면서 대화의 맥이 끊기거나 어색해지는 장면이 종종 목격됐다.

대표적인 것이 '선물'.

북한에서 선물은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하사품에 국한돼 사용된다. 친구나 친지간 주고받는 물건은 기념품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지난 15일 코엑스(COEX) 상봉장에서 남측 가족을 위해 무슨 선물을 준비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북측 이산가족은 한결같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북한에서 통용되는 보장성원(保障成員)은 지원요원을 가리키는 수행원이라는 뜻. 그래서 수행원들의 가방에는 한결같이 '보장성원' 이란 표지가 달려 있었다.

남한에서 상대방에게 감정이 좋지 않거나 호의를 거절할 때 사용하는 '일없다' 란 용어도 북한에서는 '괜찮다' '상관없다' 란 뜻으로 쓰인다.

며칠밤을 뜬눈으로 지새워 피곤하지 않으냐는 가족들의 질문에 한 북측 가족은 환하게 웃으며 "일없습네다" 라고 말했다.

외래어의 경우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북한 예술계의 첫 여성 박사이자 현재 평양음악무용대학 교수인 김옥배(62)씨는 '집단체조' 를 전공했는데 이는 매스게임이다.

음악에 맞춰 연기하는 여자체조 경기인 리듬체조는 '예술체조' 로 불린다. 또 북측 이산가족들은 오렌지 주스를 마시면서 "과일단물이 참 시원하다" 고 했다.

한편 북한에서는 냉면과 국수를 모두 국수라고 통칭한다. 평양의 명물 옥류관 냉면도 옥류관 국수라고 부른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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