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상봉의 감격을 이어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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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새 천년에 처음 맞는 광복절에 감격적인 남북 '상봉 드라마' 가 시작됐다. 어제 저녁 내내 많은 국민이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을 만나자마자 탈진해 실려나간 94세 노모, 통곡하며 부친에게 큰절부터 하는 북에서 온 자식…. 애절한 사연들은 끝도 없었다.

어째서 이제서야 만나게 됐는지 굳이 이산가족이 아니더라도 분단의 상처가 절절히 느껴지는 광경들이었다. 방문단에 끼지 못한 절대다수 이산가족의 심정은 또 어떨 것인가.

6.15 공동선언으로 가시화한 첫 사업인 이산가족 상호방문은 왜 남과 북이 화해하고 교류·협력해야 하는지 똑똑히 보여주었다. 어제 양측 방문단이 이용한 북한 고려항공 여객기만 해도 분단 이후 처음으로 우리 영공을 통과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두터운 불신도, 팽팽한 군사적 긴장도 얼마든지 완화하고 해소할 수 있다는 증거다. 이제부터는 민족의 한(恨)을 푸는 이산가족 상봉사업의 물꼬를 더 넓히고 다양화하는 일이 중요하다.

15년 전처럼 한차례 교환방문에 그치고마는 우(愚)를 되풀이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지난 12일 "올해 9, 10월에 한번씩 만날 수 있게 하고 내년에는 집까지 갈 수 있도록 해보겠다" 고 밝힌 것은 상봉의 제도화를 위한 긍정적 답신이다.

우리는 이달 29일 열리는 제2차 남북 장관급 회담과 다음달 적십자회담에서 양측이 올해 중 일정과 상봉을 정례화·제도화하는 문제까지 심도있게 논의하고 합의를 도출하길 바란다.

더욱 시급한 것은 이산가족 접촉의 절차와 방법을 다양화하는 일이다. 방북신청을 한 사람만 7만7천여명에 이르고 남한 내 전체 이산가족은 7백67만명에 달한다. 지금처럼 1백여명 단위로 만나서는 대다수가 도저히 생전에 뜻을 이룰 수 없다.

당연히 상설면회소를 설치해야 하며, 생사 여부와 주소를 확인하고 편지나 사진·물품을 교환하는 사업을 병행해야 한다.

면회·교류·기타 연락을 위한 통로로 판문점이 적당하지만, 경의선을 복구한 뒤 새로운 중간 지점에 면회소를 설치한다면 서로의 이동도 편리해 이 또한 좋은 방안이라고 본다.

우리는 차제에 남북한 당국이 국군포로·납북자에 대해서도 안부확인 및 송환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본다.

비전향 장기수나 조총련계 재일교포도 곧 고향을 찾게 된 마당에 이들을 방치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지금의 남북 협력 무드로 봐서도 실현가능성이 없는 게 아니다.

상봉의 감격을 전국민이 함께 나누고 지속적으로 누리기 위해서도 잊혀져 있고 돌보지 못했던 국군포로와 납북자에 대한 우리 정부의 강력한 송환 의지와 협상 노력이 어느 때 보다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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