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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썹에도 서리 … 강원도 철원은 숨 쉬기도 어려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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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코끝이 얼어 숨 쉬기조차 힘드네요.”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의 주류도매업소 직원이 강추위에 언 소주를 들어 보이고 있다.

6일 오전 11시30분쯤 민간인통제선(민통선) 북쪽 마을인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정연리. 수은주가 곤두박질 친 탓에 한낮이지만 오가는 주민이 거의 없어 적막감이 감돌았다. 철원기상대 자동관측장비로 측정한 이날 아침 정연리의 최저기온은 영하 30.5도.

9년 만에 영하 30도 밑으로 떨어진 것이다. 이 지역은 2001년 1월 16일에도 영하 30.5도를 기록했다. 국내 기상 관측 사상 정연리 외에 영하 30도 이하로 떨어진 곳은 1981년 경기도 양평군이 유일하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김임숙(61)씨는 두툼한 옷차림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아들 김남운(38)씨가 아침부터 디젤 승용차의 시동을 걸려고 애썼으나 허사였기 때문이다. 결국 김씨는 모처럼의 나들이를 포기했다. 이날 아침엔 눈썹과 머리카락에도 서리가 내릴 정도로 추위가 엄습했다고 한다. 기자가 취재를 하는 동안에는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아 체감온도는 그리 낮지 않았는데도 볼이 떨어져 나가는 듯했다. 볼펜도 얼어붙어 글씨가 써지지 않았다.

혹한의 날씨가 밀어닥치자 주민 불편이 잇따랐다. 철원군 지역에는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며 보험회사에 수리를 요청한 차량이 70여 대나 됐다. 수도 계량기도 10여 개 동파됐다. 김모(55)씨는 “사무실에 앞에 주차한 디젤 승용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아 수리를 요청했으나 일손이 달려 내일이나 가능하다고 해 꼼짝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추위는 소주·맥주도 얼어붙게 했다. 갈말읍 문혜리 주류도매업소에 야적한 수십 상자의 소주가 얼었다. 창고 입구에 있던 생맥주(20L) 10여 통과 40여 병의 맥주가 얼면서 부피가 팽창해 용기 밖으로 맥주가 흘러 나왔다. 이 업체 김준식(58) 대표는 “술이 얼어 당황스럽다”며 “앞으로 며칠 더 추울 것으로 예보돼 창고 안에 난방을 해야 할지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적설량 27.5㎝라는 폭설에 이어 영하 25.9도의 한파가 몰아친 충북 제천 지역의 일부 산골마을에서는 간이상수도가 얼거나 수원이 말라붙어 주민들이 식수난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눈을 녹여 식사와 빨래를 하고 있어 급수 지원이 시급한 실정이다.

강원도 철원과 춘천, 양구 등지의 7개 마을에서도 수도관 동파 등으로 식수난을 겪어 소방 당국이 긴급 급수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은 이날 2002년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 영하 25.9도를 기록했다. 종전 최저기온인 영하 21.8도(2002년 1월 3일)를 갈아치웠다.

경기 북부 지역 아침 최저기온도 포천(창수) 영하 28.0도, 연천(신서) 영하 27.7도, 가평 영하 24.8도, 양주 영하 24.6도, 고양 영하 20.4도 등 대부분 영하 20도를 밑돌았다. 포천과 연천의 경우 이날 최저기온이 문산보다 더 낮은 것으로 관측됐으나 그동안 공식 기록이 없어 역대 최저기온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추위는 철새들의 생활에도 변화를 줬다. 철원 들녘에 날아온 2000여 마리의 재두루미와 두루미는 평소 8시 전후 먹이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나 이날은 11시30분 정도에 움직임이 관찰됐다.

기상청은 “찬 공기가 몰려온 데다 4일 내린 폭설이 땅으로부터 나오는 에너지를 차단해 기온이 더 떨어졌다”며 “7일에는 기온이 더 떨어지고 충남과 전북 서해안, 전남 서부지역, 제주도 등지에는 오전까지 눈이 이어지겠다”고 밝혔다.

철원·파주=이찬호·전익진 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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