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성과급 한꺼번에 몰아 못 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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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우리투자증권의 트레이딩사업부 임직원 중 20%가량은 2008년분 성과급 중 일부를 3년간(2009~2011년) 나눠 받고 있다. 그해 성과급 액수가 1억원이 넘는 직원들이 대상이다. 이 회사가 2008년 도입한 ‘장기 보유 보너스’ 제도에 따른 것이다. 회사가 이 제도를 도입한 건 직원들이 장기적인 성과를 내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거액의 성과급을 받고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는 일을 막는 효과도 있다.

미래에셋증권도 비슷한 제도를 운영한다. 특정한 사업에 자금을 빌려주고 투자 수익을 공유하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나 선박펀드같이 장기간 진행되는 사업부문에 대한 성과급은 2~3년 동안 나눠 지급한다. 수수료는 미리 들어오지만 나중에 사업이 부실해지는 위험도를 감안한 것이다.

올해부터 자산 규모가 큰 41개 은행·증권·보험사는 위의 두 회사와 비슷한 성과급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은행연합회 등 금융권 단체들과 함께 ‘금융회사 성과보상체계 모범 규준’을 만들었다고 6일 밝혔다. 금융위원회 도규상 금융정책과장은 “G20 정상의 합의해 따라 성과급 체계를 개선한 새 기준을 만들었다”며 “주요 금융회사는 이 기준에 따라 보상 제도를 만들어 올해분 성과급을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는 단기 성과급을 의식한 금융회사 임직원들이 무리한 투자에 나서고, 이 과정에서 부실이 생겨 금융시장 전체의 불안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이번에 나온 모범 규준에 따르면 금융회사 경영진과 투자금융, 유가증권 운용 등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성과급 중 40~60%만 먼저 받고 나머지는 3년 이상 나눠서 받도록 했다. 예컨대 2010년 성과급이 1억원이면 2011년 초엔 4000만원을 받고 2012~2014년엔 2000만원씩 받는 방식이다. 또 성과급의 50% 이상은 장기 성과와 연계하기 위해 주식이나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등으로 줘야 한다. 성과가 목표에 못 미치거나 투자 손실이 발생하면 성과급 지급을 줄이거나 중단할 수 있다.

 이번 성과급 제한 조치는 국제 공조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한국 등 24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금융안정위원회(FSB)는 미국 등 대형투자은행들의 과도한 보상체계가 금융위기의 원인이 된 것으로 보고 지난해 총회를 열어 금융회사의 보너스 체계를 바꾸기로 했다.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선 FSB가 제시한 원칙을 넘어 보다 강력한 임금 제한책까지 도입할 움직임이다.  

김원배·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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