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토론장 된 의사협회장 첫 공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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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정부의 의약분업안이 불만이라면 무료진료 등의 집단행동이 더 효과적인 방법이었을 것 같은데, 폐업을 강행한 것은 결국 의보수가 때문이 아닙니까."

"돈 때문은 절대 아닙니다. 국민 건강을 생각해 완전한 의약분업을 실현하기 위한 불가피한 행동이었습니다."

8일 오후 서울지법 524호 법정. 의료계 폐업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재정 대한의사협회장의 첫 공판이 열린 이 법정은 의료인과 비(非)의료인 간의 의약분업 토론장과도 같았다.

토론을 주도한 쪽은 심리를 맡은 형사2단독 김철현(金哲炫)판사.

金판사는 검사가 직접신문을 마치자 곧바로 "나는 전문 지식이 없다" 고 전제하면서도 의료계 폐업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나갔다.

"지금까지 임의.대체조제가 계속돼 왔지만 큰 문제가 없었고 동등한 약효를 내는 약이라면 대체조제를 해도 괜찮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새 약사법에서 임의조제(혼합판매)금지를 5개월간 유예한 것이 재폐업을 할 만큼 중대한 문제였나요. "

이에 대해 金회장은 의사들의 입장을 설명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판되는 약의 절반이 카피본으로 동등한 약효를 내지 못합니다. 이런 문제점을 없애기 위해서는 생물학적 동등성시험(인체효능실험)방식으로 약효동등성 시험을 해야 하는데, 현재 의약분업안은 이 부분을 제대로 담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문답은 계속됐다.

"의사들의 완전 의약분업 주장이 너무 추상적으로 보이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내용입니까."

"50년간 계속돼온 약사들의 진료권 행사를 막고 궁극적으로는 미국식 의약분업체제로 가자는 것입니다."

"완전 의약분업을 거론하는 것은 솔직히 의약분업을 하지 않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불완전한 의약분업은 사회 혼란만 불러올 뿐입니다."

金판사와 金회장의 논쟁은 1시간 넘게 진행됐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다음 재판으로 미뤄지고 말았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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