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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맛은 배신하지 않는다 ‘조폭 떡볶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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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홍대 조폭떡볶이의 윤태명 사장(사진 오른쪽)은 ‘손님을 내려다보며 제압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가게의 떡볶이 부스를 한껏 높였다. 손님보다 높은 위치에서 떡볶이를 퍼주는 그의 자세는 소문대로 조폭스럽지만, 의리로 만들어 낸 변치 않는 떡볶이 맛에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서울 홍대 주차장 골목의 명물로 꼽혔던 트럭 떡볶이집이 최근 인근에 82㎡짜리 번듯한 가게를 냈다. 가게 이름은 ‘조폭떡볶이’다. 20년째 같은 자리에서 간판도 없이 트럭 장사를 했지만, 사람들은 이 트럭을 늘 ‘조폭떡볶이’라 불렀다. 이렇게 남들이 부르던 ‘무시무시한’ 이름을 그대로 가게에 붙인 것이다. 이 집이 조폭떡볶이로 불렸던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길거리 장사임에도 한 자리에서 그렇게 오랜 세월을 버틴 ‘힘의 근원’이 따로 있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그 하나였다. 또 조폭의 ‘포스’가 느껴지는 주인 윤태명(46) 사장 때문이다. 금목걸이에 문신을 한 데다 무엇을 물어도 단답형 대답만 하는 까칠한 태도가 이런 억측을 확신으로 이끌어 가기도 했다. 이는 또 다른 화제로 이어졌다. 이 집 떡볶이는 ‘마약떡볶이’로 불린다. 한번 먹으면 계속 먹고 싶게 만드는 이유가 마약을 탔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그래도 어쨌든 그는 승승장구해 이젠 길거리 음식의 성공신화로 떠올랐다. 이젠 길거리에서 ‘제도권’으로 옮겨간 이 까칠한 ‘조폭 사장’을 만나 그 의혹에 대해 물었다.

글=한은화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조폭떡볶이는 조폭과 관련 없는 평범한 아저씨들이 운영하는 가게입니다’. 조폭떡볶이 가게의 간판 밑에 적혀 있는 글귀다. 그래서 물었다. “정말 조폭이 아니세요?” 그는 절대 아니라고 대답했다.

“장사를 하던 초창기에 ‘나부터 먼저 달라’고 윽박지르는 취객을 상대로 주먹다짐도 마다 않고 싸우다 보니 어느 새 ‘조폭’이라는 별명이 생긴 거죠.”

그가 홍대에서 떡볶이 노점을 시작한 것은 1987년이다. 노가다부터 안 해본 것 없이 살다 ‘먹는 장사가 남는 것’이라는 생각에 떡볶이 장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룻밤에 여의도, 홍대, 신촌 순으로 손님이 많은 곳을 따라 이동하며 ‘트럭 장사’를 했다. 그러다 홍대 주차장 골목에 자리를 잡았다. 늘 새벽까지 영업을 하다 보니 취객을 상대하는 게 일이었다.

“멋모르고 취객을 상대로 대놓고 싸우다 경찰서까지 가는 일이 허다했죠. 그러다 보니 슬슬 조폭이라는 소문이 나대요.”

한번 먹으면 자꾸만 먹고 싶어져 마약떡볶이라 불리는 조폭떡볶이.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조폭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장사는 더 잘 됐고, 손님들은 더 유순해졌다. 손님들에게 무뚝뚝하게 대해도 아무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고, 취객들도 자기 순서를 기다리며 공손하게 음식을 받아갔다. 이 때문에 ‘조폭’으로 불렸던 20년 동안, 그도 이 별명에 불만이 없었다. 그에겐 성공을 가져다 준 이름이었다. 하지만 나름 ‘제도권’으로 들어오려니 힘이 들었다.

“점포를 얻는 데만 1년이 걸렸어요. 상가 주인들이 ‘조폭이 들어오면 곤란하다’며 계약을 꺼렸죠. 그래서 아내와 함께 상가 주인을 찾아가 잘하겠다고 애걸한 적도 있었어요.”

또 ‘조폭 떡볶이’라는 이름으로 상표 등록을 하기 위해 세무서에 찾아갔을 때도 “혐오감을 주는 단어이니 다시 고려해 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열게 된 가게의 컨셉트는 ‘조폭’스럽다. 일단 모든 시스템이 ‘셀프’다. 주문하는 곳, 계산하는 곳, 음식 받는 곳의 동선에 따라 손님이 알아서 움직여야 한다. 오뎅 국물도 직접 떠다 먹고, 다 먹은 식기는 스스로 반납해야 한다. 음식을 내주는 종업원들은 손님보다 높은 위치에 앉아서 손님을 내려다보며 퍼준다.

“위에서 내려다보며 제압하면 손님들이 끌려오게 돼 있어요. 우리 가게만의 특이점이 ‘조폭’이라는 별칭이다 보니 아예 모든 컨셉트를 그쪽으로 맞췄습니다.”

요즘처럼 무릎 꿇고 주문 받는 ‘친절시대’에 손님들은 이 가게에만 오면 주인의 불친절을 감내한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윤 사장은 ‘변함없는 떡볶이의 맛’이라고 답을 내놓는다. 실제로 쌀과 밀가루를 섞어 만든 떡에 맵고 칼칼하면서 달달한 맛이 초등학교 시절 학교 앞에서 사먹던 추억의 떡볶이 맛이라는 건 사람들이 이 집을 찾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그래서 또 물었다. “정말 마약을 타는 게 아니냐”고. 윤씨는 “떡볶이의 맛은 마약이 내는 게 아니라 ‘20년 동안 변치 않는 맛의 의리’를 지키는 노력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의리’를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다. 이 작은 떡볶이집에 직원이 15명이다. 그는 그동안 의리를 지키며 함께 해 온 직원들과 끝까지 함께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리고 이 말을 꼭 독자들에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제일 고마운 것은 10년이 넘도록 함께 한 친구들입니다. 조폭떡볶이는 조폭이 아닌 평범한 아저씨들의 ‘맛있는 의리’ 덕에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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