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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제3의 이산가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오실 어머님을…' 로 시작하는 노래 '불효자는 웁니다' 처럼 우리 정서에 착 들어맞는 노래도 드물다.

일제 치하이던 1940년 7월 가수 반야월이 처음 부른 이 노래는 60년이 지난 요즘에도 많은 이들의 콧등을 시큰거리게 한다.

이달 15일 상봉을 앞둔 남북 이산가족은 물론 상봉 기회를 잡지 못한 절대다수 이산가족에게는 특히 그럴 것이다.

'불효자는…' 는 25년 전 서울 한복판에서도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을 눈물바다에 빠뜨렸다. 75년 9월 24일 국립극장에서 열린 '재일동포 모국방문단 서울시민 환영대회' . 희극배우 고(故)김희갑(金喜甲)의 구성진 목청에 30년 만에 모국을 찾은 재일동포들은 가슴이 미어져 손수건을 챙길 정신마저 놓쳤다.

金씨 자신도 함북 청진에서 월남한 이산가족. 당시 중앙정보부 판단기획국장으로 조총련동포 모국방문사업을 추진했던 김영광(金永光) 전 의원은 "환영대회 이틀 전 심야 대북방송에서 이 노래를 듣고 귀가 번쩍 띄어 선택했다" 고 회고했다.

일본쪽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일본 이주는 1880년대에 시작됐다. 1930년대 말 강제징용이 본격화하면서 부쩍 늘어 37년 70만명이던 재일동포 수가 44년에는 1백93만명, 45년 해방 직전에는 무려 2백40만명에 달했다.

일제의 국가총동원법(38년)과 징용령(42년)이 주된 요인이었다. 현재 70만명 가까운 재일동포는 경남(21만명).경북(14만명)등 영남 출신이 절반을 웃돈다.

다음으로 제주(11만명).전남북(합계 6만명) 순이니 역시 남한 출신이 압도적이다. 15만명으로 추산되는 조총련계도 90% 이상이 남한에 고향을 두고 있다. 조총련계의 국적은 '조선' 으로 표기돼 있으나 북한과 국교가 없는 일본정부는 '조선은 국가명이 아니라 일종의 기호(記號)' 라는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요즘은 덜해졌다지만 학창시절부터 일본인 학생들의 차별과 '조센가리(조선인 사냥)' 를 당하며 자란 나이 많은 재일동포들의 고향 그리는 심정은 오죽할까 싶다. 어제 끝난 남북 장관급회담이 조총련계 동포의 남한 방문에 합의했다.

부모가 생존하건 무덤에 누워 있건 이들도 반세기 만에 고향을 찾아 '불효자는 웁니다' 를 목놓아 부르게 됐으니 이념을 떠나 반가운 일이다.

노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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