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풍경으로 본 일본의 정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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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새해 첫날인 1일 오전 일본 도쿄 세타가야(世田谷)구에 있는 민주당 정권의 최고 실력자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간사장의 자택에서 신년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166명의 국회의원이 몰려들었다. 요미우리(讀賣) 신문은 3일 “권력의 절정기를 맞이한 오자와 간사장을 알현하려는 국회의원들이 대거 몰려들었다”고 전했다. 내각의 2인자인 간 나오토(菅直人) 부총리는 물론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의 측근인 히라노 히로후미(平野博文) 관방장관 등 각료급 6명도 모습을 드러냈다. 오자와가 일본 신년 정국의 ‘태풍의 눈’이 되고 있다.

이날 모임은 앉을 자리가 부족해 1· 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1부에는 초선 의원들인 ‘오자와 칠드런’ 위주로, 2부엔 다선 의원 중심으로 신년회가 열렸다. 오자와 간사장은 일일이 의원들의 기념 촬영 요청에 응하는 등 기분이 최고조에 달했다고 참석 의원들이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오자와는 지난해 12월에도 민주당 의원 143명과 지지자 등 600여 명의 대규모 수행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한 바 있다.

반면 하토야마 총리는 새해 첫날 소수의 비서들만 대동하고 실직자 임시 숙소를 둘러봤다. 2일에는 부인 미유키(幸) 여사와 함께 고베(神戶)를 찾아 친척 병문안을 한 데 이어 장인의 묘소를 참배했다. 이틀간 관저를 거의 비우는 바람에 새해 인사차 방문한 국회의원은 거의 없었다고 지지(時事) 통신이 3일 보도했다.

1일 도쿄 세타가야구의 자택에서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간사장이 국회의원들 앞에서 참의원 선거 필승을 다짐하고 있다. [도쿄=지지통신]


이들의 대조적인 행보가 보여 주는 것처럼 오자와는 지난해 연말부터 민주당의 명실상부한 최고 권력자 자리를 굳혀 가고 있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도 오자와가 나서면 척척 풀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가 정책은 하토야마 총리가 이끄는 내각에 맡기고 자신은 당 운영에만 전념한다’는 오자와의 약속은 이미 휴지 조각이 됐다.

지난해 말 내각이 부족한 재원 때문에 정권 공약(매니페스토) 실행에 어려움을 겪자 과감하게 일부를 폐지하고 나선 것도 오자와의 뚝심 때문에 가능했다. 내각 최대의 외교 현안인 오키나와 미군 비행장 이전 문제에 대해서도 침묵을 깼다. 그는 지난해 12월 29일 “깨끗한 바다를 메우는 것은 안 된다”고 밝힘으로써 바다 매립지에 활주로를 만드는 기존 미·일 합의안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후 내각에서는 올 5월을 목표로 새로운 대체지를 찾는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오자와는 신년회에서 올 7월 실시되는 참의원 선거에 전력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의 집념대로 민주당이 참의원까지 과반수 의석을 장악하게 되면 민주당은 견제받지 않는 절대 권력을 갖게 된다.

오자와의 적극적인 행보는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검찰의 수사 칼날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요미우리 신문은 “오자와는 불법 의혹을 모두 부인해 왔으나 최근 장부 기록에 없는 자금이 속출하면서 검찰 조사를 피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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