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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여는 학인(學人) ① 전상인 한국미래학회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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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미래학의 패러다임 변화를 예고하는 전상인 한국미래학회 회장. 개별 국가를 초월하는 글로벌한 이슈, 개인의 일상과 관련된 주제가 현대 미래학의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미래학은 주로 국가단위의 거대담론과 공공계획을 다뤘다. [김태성 기자]

2010년이 밝았다. 국내외로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새해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를 살펴보는 ‘내일을 여는 학인(學人)’ 연재를 시작한다. 인문·사회과학 분야를 중심으로 아카데미의 새 흐름과 핫 이슈를 선도하는 학자들을 심층 인터뷰하는 자리다. 우리의 오늘을 진단하고 내일을 준비하자는 취지다. 첫 순서로 한국미래학회 전상인 회장을 만났다.

‘미래학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종전 미래학의 주류가 국가단위였다면 현재의 축은 개별국가를 초월하는 세계적 이슈와 개인의 삶이다. 한국미래학회 전상인(52·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회장. 사회학자로서 미래학의 현재와 앞날을 고민 중이다. 1968년 출범한 한국미래학회의 초대회장은 고 이한빈(1926∼2004) 부총리. 2대 회장은 최정호(77) 울산대 석좌교수, 3대 회장은 김형국(69)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이었다. 2006년 4대 회장에 취임한 전 교수의 연배는 전 회장들과 차이가 많다. 한 세대를 뛰어넘은 느낌이다. 시대의 차이는 문제의식의 차이로 직결된다. 세계화·지방화·개인화가 대세로 굳어지면서 미래학에서도 국가의 영역이 크게 줄어들었다. ‘국가 이후’의 시대를 예측하는 전 회장과 마주앉았다.

-개인들이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과 학문으로서의 ‘미래학’은 무엇이 다른가.

“무속이나 점성술에서 알 수 있듯 개인적 차원에서의 미래에 대한 관심은 동서고금의 보편적 현상이다. 반면 학문으로서의 미래학은 서구사회가 주도한 근대문명의 산물이다. 미래학은 보다 나은 미래를 상정하는 근대 계몽주의, 혹은 합리주의와 궤를 같이한다. 권력의 정당성을 가시적 업적에서 찾으려는 근대국가의 등장도 미래지향적 공공계획의 필요성을 부추겼다. 특히 20세기에 들어와 대공황·전쟁 등 거시적 위기를 잇따라 겪게 되면서 학문으로서의 미래학이 발전하게 됐다.”

-국가의 거시적 계획이 미래학의 주요 관심사라는 뜻인가.

“그렇다. 미래학의 주류는 국가 단위의 미래연구이며, 이를 위한 장기비전 내지 공공계획의 제시를 목표로 해왔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미래학과 연관된 국가 목표랄까, 그런 게 있었나.

“이승만 정부의 경우 국가건설이겠고, 박정희 정권의 경우 산업화 혹은 경제발전이었다. 이에 비해 민주화는 국가목표라기보다 국민적 염원이었다. 1950년대 후반까지 건국이라는 목표가 일단락된 후 부국을 위한 일련의 공공계획이 시동됐다. 가시적으로 실천된 것은 1962년부터 1997년까지 일곱 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다. 대한민국 60년사에서 국가주도 공공계획이 35년 동안 있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나 5개년 계획이 용도폐기 되자마자 IMF 경제위기가 발생했다는 점, 유의해봐야 한다.”

-현 정부의 미래학적 국가목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산업화, 민주화 이후 언필칭 선진화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선진화는 실체가 없는 수사일 뿐이다. 선진과 미래를 얘기하지 않는 정부는 지구상에 하나도 없을 것이다. 좋든 싫든 작금의 문명사적 트렌드는 세계화와 개인화다. 국가나 계급, 혈연이나 지연과 같은 전통적 제도나 집단의 중요성이 점차 감소한다. 대신 자기결정·자기계발·자기책임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른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를 맞아 국가목표라는 발상 자체가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태에 직면한 오늘날 국가는 자신의 존재이유를 지속하기 위해 개인의 행복 영역으로 적극 개입하려고 한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설치한 이른바 ‘행복GDP 스티글리츠 위원회’가 그렇고 이명박 정부가 개발하고 있는 ‘국민행복지수’도 같은 맥락이다.”

-문명의 키워드가 국가에서 개인으로 이동한 건 상식이다.

“그렇다. 과거의 미래학은 ‘국민국가 전성시대’와 큰 틀에서 동행해 왔다. 하지만 세계화·지방화·개인화와 함께 국가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한국미래학회도 국가 이후 시대, 국가 이외 단위에 관심을 늘이고자 한다. 글로벌하면서 동시에 로컬한 이슈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미래에 대한 아젠다 설정 방식 자체가 하향적인 것(top down)으로부터 상향적인 것(bottom up)으로 바뀌어야 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이제는 ‘국가의 눈’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관행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일반인의 시각, 유권자나 납세자의 입장에서 미래를 구상할 때다.”

-이명박 정부 들어 청와대에 ‘미래기획위원회’라는 기구가 생겼는데.

“노무현 정부가 상대적으로 과거지향적이었다면, 이명박 정부는 비교적 미래지향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미래기획위원회 역시 장기적 미래를 준비하는 기구라기보다 ‘현재기획위원회’의 성격이 강하다. 현행 단임제 대통령중심제하에서 장기 국가발전전략 수립은 근본적으로 무망해 보인다. 국가의 모든 미래기획 사업이 정치적으로 단발주의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장밋빛 미래를 그렸다가 지웠다가 하는 국가적 낭비가 계속되고 있다. 미래기획위원회를 차라리 입법부 소관으로 하여 정권교체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도 한 가지 대안일 것이다.”

-서구의 미래학과 우리의 미래학의 차이가 있다면.

“미래연구를 선도하는 나라가 역시 선진국이다. 미래연구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문화적 종속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국내 미래학에 사대주의적 경향이 만연돼 있다. 이른바 세계적 미래학자들의 지나가는 한두 마디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분위기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고 모든 역사가 경로의존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미래학의 토착화 혹은 한국적 미래학의 정립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우리 고유의 미래학이 없다면 우리는 영원히 남을 뒤에서 쫓아가는 이류국가에 불과할 것이다.”

-미래학의 미래도 불확실해 보인다.

“현재 국내에는 미래학을 가르치고 배우는 학과가 전무(全無)한 실정이다. 명실상부한 미래학자 또한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래기획위원회도 중요하고 각종 미래관련 사업도 필요하지만, 진정으로 미래학의 발전을 바란다면 장기적으로 볼 때 지금이라도 미래학과 설치 등을 포함한 미래연구자 인력배양을 위한 노력이 더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배영대 기자



68년‘한국2000년회’창설
근대화 과정과 동반 성장

한국미래학회 어제와 오늘

한국미래학회는 1968년 ‘한국2000년회’라는 이름으로 창설됐다. 서구에서도 1960년 초반에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한국미래학회의 출범은 빠른 편이다. 서구의 미래학은 자본주의와 지구환경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가면서 탄생했다. 우리의 미래학은 자본주의 도입과 발전이라는 개발도상국 차원의 현안이 주축을 이루면서, 동시에 서구 선진국의 문제의식까지 감안해야 했다.

71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와 함께 완성한 ‘서기 2000년의 한국에 관한 조사연구’는 학회 초기의 대표적 성과로 꼽힌다. 2000년 한국의 미래상을 30년 전에 탐구한 것으로, 델파이(delphi·전문가 다수의 경험과 지식을 종합해 미래를 계량적으로 예측) 방법을 처음 사용했다. 이 보고서를 통해 한국이 고밀도 도시화 사회, 고도 산업사회로 변화해갈 것을 전망했다. 인구·경제·산업·과학·기술 부문의 예측은 대체로 들어맞았다.

한국미래학회가 미래학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고, 우리 근대화 과정과 동반 성장해왔다는 점은 평가 받아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미래전문 연구기관이라기 보다는 연구자 네트워크 혹은 일종의 ‘현자모임(wisemen’s club)’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는 점이 한계이자 극복해야 할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배영대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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