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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공부가 가장 싫었어요' 화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학벌은 한국 사회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가장 위력적인 잣대다.오죽하면 고등학교 내내 수업 한시간 안듣고 방학이 언제인지도 모르는 연예계 10대 스타들조차 대학 간판 따려고 수능 시험을 치는 형편 아닌가.

'공부가 가장 싫었어요'에 등장하는 9명의 주인공들은 이런 세상을 거꾸로 사는 사람들이다

대학 문턱에도 못가본 사람, 혹은 남들처럼 대학에 들어가긴 했지만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빈껍데기를 박차고 나온 사람 등 배경은 다양하지만 결국은 한 지점에 모인다.

사회의 편견과 획일화한 제도권 교육에 순응하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한 미워할 수 없는 반항아라는 점이다.

6개월간의 인터뷰를 통해 완성한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인물은 인기가수 김현정(22)과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로 서서히 이름을 알리고 있는 류승완 감독(27), 뮤직비디오계의 일인자 홍종호 감독(32)등 유명인에서부터 스트리트 댄서 윤상용(24)처럼 일반인에게 낯선 이름까지 폭이 넓다.

저자가 이들을 선택한 기준은 대학을 거치지 않고 바로 사회에 나와 자신이 몸담은 분야에서 인정을 받았고 앞으로 더 큰 성공이 기대되는 20~30대 젊은 프로들.

이들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느닷없이 등장해 분에 넘치는 행운을 거머쥔 '신데렐라' 취급을 받는게 사실이다.

정말 그럴까. '그녀와의 이별' 로 가요계에 데뷔한 김현정은 학창 시절을 생각하면 선생님에게 맞은 기억밖에 없다고 한다.

학교가 원하는 단정한 용모를 하기에는 개성이 너무 강했다. 학교 공부에도 취미가 없어 방과 후에는 노래연습에 매달렸다. 명지전문대 유아교육과에 진학했지만 한학기만에 그만뒀다.

물론 눈꼽만큼의 미련도 없다. 학교는 '장점을 없애고 사람을 무난하게 하는 곳' 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범생들은 어쩌면 공부못하는 학생의 말도 안되는 핑계라고 넘길지 모른다.

하지만 하고 싶은 노래를 위해서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비디오 수거, 전단지 배포 등 아르바이트를 하며 꾸준히 노래공부를 계속했던 그녀의 노력을 들추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학교 공부가 싫었을 뿐 꿈을 실현하는 인생공부는 누구보다 열심히 했던 것이다.

김현정 뿐이 아니다. 대학을 안갔든 못갔든 이 책 주인공들은 모두 문제아로 낙인찍힌 학창시절, 꿈을 이루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런 주제를 부각시키다보니 때로 지나친 논리 비약이 눈에 거슬리기도 한다. 이들이 학교를 보는 눈은 남들과 분명히 다르고, 때로 그런 점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시각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여과없이 그대로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자퇴, 한림대 1학년 휴학 이후 벤처업계의 '잘 나가는' 사업가로 변신한 김병진(24)이 97년 세운 지니컨텐츠 부분이 그렇다.

대학 리포트 무료 제공 서비스로 큰 인기를 끌었으나 한국 대학의 고질적인 짜깁기 문화를 양산해 사회적 문제로까지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반강제적으로 듣게 된 교양 학점 때문에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는 것은 낭비" 라며 "고객이 찾는다는 것은 내 사업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대학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걸 대변한다" 는 당돌한 주장을 펼친다.

제대로 걸러지지 않아 선택한 인물들을 지나치게 미화시킨다는지 하는 몇가지 단점을 제외한다면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 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하라' 는 것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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