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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팔아 번 돈으로 석유 안 쓰는 도시 건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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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호 11면

아부다비투자청(ADIA·사진 뒤쪽의 뾰족한 건물)은 세계 최대 규모(9000억 달러)의 국부펀드를 운용한다. UAE는 이 돈으로 석유산업 중심인 경제구조를 하이테크 산업국가로 탈바꿈시키려 한다. [AP=연합뉴스]

한국이 첫 원전 프로젝트를 수출할 아랍에미리트(UAE). 우리의 해외 수주 역사상 최고액(명목가치 기준)인 400억 달러짜리 원자력발전소 건설과 공동운영권을 발주한 나라다. 하지만 우리가 UAE에 대해 알고 있는 상식은 페르시아만 지역의 이슬람 군주국 연합, 산유국, 그리고 떠들썩한 개발정책으로 유명한 두바이가 포함된 토후연합국이라는 정도다.

UAE 아부다비의 녹색 야망

7개 토후국(이슬람 군주인 에미르가 다스리는 나라)으로 이뤄진 UAE는 그리 간단한 국가가 아니다. 현재 중동과 이슬람 국가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경제개발을 추진하는 나라다. 글로벌 금융 위기의 와중에서도 경제성장률이 연 8%를 넘는다. 무엇보다도 이 나라는 미래지향적인 첨단기술로 백년대계를 설계하고 있다. 중동 최초의 상업용 원전을 한국에 발주한 것도 그 일환이다. UAE는 산유국을 벗어나 첨단 그린산업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해적과 진주의 해안, 그리고 검은 황금
페르시아만의 남쪽과 오만만의 서북쪽에 걸쳐 있는 UAE 지역은 고대부터 작은 부족국가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7세기 이슬람을 받아들인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오스만튀르크의 영향권에 있던 이 지역은 16세기부터 150년간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다.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에 이르는 항로를 개발하면서 중간기지로 이곳을 차지한 것이다. 그 뒤 오스만튀르크의 영향권에 있으면서 주변을 지나는 무역선을 약탈하기도 했다. 그래서 해적 해안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곳은 19세기 영국의 세력권으로 들어갔다. 1853년 영국과 영구 동맹협정을 맺은 데 이어 1892년 영국의 보호령이 됐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영국의 국력이 쇠약해지자 7개 토후국은 1952년 협의회를 구성하고 상호 협력을 강화했다.

1968년 영국이 보호자 역할을 중단할 뜻을 밝히자 이들은 이웃한 카타르·바레인과 연방을 구성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영국이 보호의무 만료일로 선언(71년 12월 1일)한 지 하루 만에 이들 7개 토후국은 UAE라는 이름으로 독립국가를 건국했다. 대통령은 가장 큰 아부다비가, 총리는 둘째로 큰 두바이가 맡기로 했다. 연방은 대통령 중심제이지만 각 토후국은 절대군주제를 채택했다.

이 지역의 전통산업인 진주조개잡이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대공황이 닥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 미키모토의 양식 진주가 나오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1960년대 유전 개발로 이 나라는 ‘검은 황금의 해안’이 됐다.

석유 다음의 먹을거리를 찾아서
UAE의 대통령인 할리파 빈 자이드 알나하얀의 고민은 깊다. 석유로 번영을 구가하기 시작한 70년대 이후 UAE에서 작업복을 입고 먼지 속에서 땀 흘려 일하는 자국민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UAE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현지인들은 냉방이 잘되는 사무실에 앉아 편안히 일하는 공공부문 일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건설직종 같은 힘든 일은 대부분 인도·파키스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몫이다.

게다가 사회복지가 거의 완벽해 국민은 힘들여 일하지 않고도 상당한 수준의 생활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숙련 기술자가 필요한 제조업의 발전은 기대하기 힘든 구조다. 문제는 아무리 석유가 많이 나는 산유국이라고 해도 과도한 복지정책을 언제까지나 펼 수 없다는 점이다. 인구는 늘고 석유자원은 언제 고갈될지 모른다. 나라 안에는 석유회사와 국부펀드 운용사, 그리고 공공 부문 말고는 별다른 일자리가 없다. 최고 연 2000억 달러의 수입을 내는 석유산업을 제외하곤 국부를 창출할 경쟁력 있는 산업과 기업이 없기 때문이다. 할리파가 경제구조 개혁에 드라이브를 거는 이유다.

싱가포르·노르웨이 벤치마킹
할리파는 석유 부국인데도 친환경 미래도시에 관심이 많다. 친환경 ‘에코 시티’라는 확실한 개념을 갖고 건설 프로젝트들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초고층 빌딩을 선호하는 두바이와 차별화된다. 할리파는 싱가포르·뉴질랜드·노르웨이를 벤치마킹했다. 쾌적하고 친환경적인 도시를 건설한 강소국 모델이다.

그는 화석에너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신도시인 ‘마스다르 시티’를 2015년까지 아부다비 시티 근처에 건설하기로 했다. 마스다르는 아랍어로 자원을 뜻한다. 인구 5만 명 규모가 될 이 소도시는 석유를 비롯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에너지를 전혀 이용하지 않는다. 태양열 전지 등 친환경 에너지만을 이용해 100% 전기를 생산하게 된다. 석유를 쓰는 자동차의 운행도 허용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쓰레기 배출이 없는 시스템을 운영한다. ‘지속 가능형 개발도시’라는 별명을 가진 마스다르 시티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이산화탄소 제로, 쓰레기 제로’의 도시로 건설된다. 장기적으로는 이 도시를 건설하면서 전 세계의 경쟁력 있는 그린 기술을 들여와 아부다비를 하이테크 도시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이런 미래 환경도시를 중동 사막에 세우겠다는 생각을 서구의 환경 운동가가 아닌, 전통적인 생활 방식에 익숙한 중동의 지도자인 할리파가 해낸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세계자연보호기금(WWF)과 협약을 맺고 지원을 받기로 했다. 인재가 부족하면 전 세계에서 아웃소싱하는 것은 두바이와 닮았다.

아부다비는 마스다르 시티에 국제기구인 ‘국제 재생가능 에너지 기구(IRENA)’ 본부를 유치했다. 이 과정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를 비롯한 전 세계 주요 인사의 지원을 받았다. 아부다비는 마스다르 시티를 신에너지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바탕으로 2030년까지 아부다비를 국제적인 친환경 비즈니스 허브로 키우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아부다비는 화석연료인 석유를 팔아 번 돈으로 그린 테크놀로지와 그린 시티 개발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에서 항공기술까지 확보 노력
할리파가 중동에서 처음으로 상업용 원전을 건설하려는 계획도 그린 비즈니스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할리파의 야망은 원전 건설에서 그치지 않는다. 건설 과정에서 첨단 기술을 이전받아 세계적인 원자력 강국에 올라서려 한다. 이번 원전 프로젝트 발주 조건에 기술이전이 필수적으로 포함된 이유다.

사실 할리파는 첨단기술 확보에 필사적이다. FT 보도에 따르면 아부다비 국부펀드의 하나인 무바달라는 지난해 세계적인 원전 건설사인 GE와 공동으로 아부다비에 80억 달러 규모의 합자법인을 세웠다. 그는 다양한 고부가 하이테크 산업을 육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분야를 주목하고 있다. 아부다비의 국영 투자회사인 어드밴스드 테크놀로지 인베스트먼트(ATIC)는 지난해 9월 싱가포르의 반도체업체인 차터드 세미컨덕터를 18억 달러에 매입했다. ATIC는 미국 반도체회사인 AMD와 공동으로 ‘글로벌 파운드리’라는 회사를 설립했으며, 차터드 세미컨덕터를 이 회사와 합쳐 덩치를 키울 예정이다.

할리파는 우주항공 분야에까지 손길을 뻗치고 있다. 무바달라 펀드는 에어버스를 만드는 EADS와 일부 항공기 부품을 아부다비에서 제조하는 계약을 했다. 아부다비에서 젊은 기술자들의 손으로 항공기 부품을 개발하고 제조하게 된 것이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이탈리아·스위스 항공업체들에 대한 지분 투자에도 나서고 있다.

할리파가 운영하는 국부펀드의 하나인 무바달라는 설립 목적부터 독특하다. 벤처 투자와 기업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아부다비 경제를 다양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할리파가 UAE와 아부다비를 어떤 나라로 만들려는지 의도가 분명히 보이는 부분이다. 그것은 오일달러로 최첨단 기술을 확보해 단숨에 고부가 하이테크 산업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것이다. 할리파의 야망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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