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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500대 기업 미국·일본은 줄고 중국 대약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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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호 24면

두 번째 밀레니엄의 첫 10년(2000~2009년)이 막 지나갔다. 1990년대 말 새 천년을 앞두고 세계는 밀레니엄 버그, 즉 Y2K로 인한 혼란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혼란은 컴퓨터 오류가 아니라 엉뚱하게 10년 전 호황을 구가한 금융시스템에서 발생했다.

뉴 밀레니엄 첫 10년, 세계 경제는 상전벽해

미국·일본 등 20세기 주도국에서 나오는 첫 10년에 대한 평가에는 한숨과 시름이 배어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지난 10년을 ‘혼란 속에 자신감이 무너진 시대(Era of confidence ends in trepidation)’라고 정의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같은 날 뉴욕 타임스 칼럼에서 “첫 10년에 미국은 경제적 관점에서 얻은 것도, 배운 것도 없는 빅 제로(Big Zero) 시대” 고 잘라 말했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도 미국인들이 과거 10년을 ‘지옥 같은 10년(the Decade from Hell)’ 또는 ‘깨어진 꿈의 10년(the Decade of Broken Dreams)’이라고 부른다고 소개했다.

새로운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도 등장했다. ‘잃어버린 세대’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가치관과 도덕체계를 잃고 방황하는 젊은 세대였다면 새 버전은 일자리가 없는 젊은이를 가리킨다.

일본은 10년도 모자라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통탄한다. 지난달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잃어버린 20년에 종지부를 찍을까’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20년 전 닛케이평균이 기록한 3만8915엔은 거품의 꼭대기이자 거품 붕괴의 출발점이었다. 20년 후인 지난해 12월 30일 주가는 1만546엔. 3분의 1로 떨어진 것이다.

음지가 있으면 양지도 있다. 신흥국들엔 ‘희망과 포부의 10년’이었다. 중국은 지난 10년간 ‘세계의 떠오르는 경제적 파워(world’s rising economic power)’가 됐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거치며 중국은 미국과 대등한 ‘빅2’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다. 브라질·인도 등 신흥국도 약진을 거듭했다.

세계 경제 불균형이 부른 혼돈
세계경제는 2000년대 들어 미국과 신흥국 간 불균형이 깊어졌다. 미국은 늘 경상수지 적자를 내고 중국·일본 등 제조업 강국과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 등 자원부국은 이를 메워줬다. 불균형은 적자국의 경제 파탄과 흑자국의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미국 월가가 쥐락펴락한 글로벌 금융시스템은 흑자국의 돈을 적자국(특히 미국)으로 퍼나르고, 첨단 금융기법은 1달러의 자산을 수십 달러, 수백 달러로 불리는 마술을 부렸다.

해외에서 유입되는 자본 덕분에 미국 금융기관에는 돈이 넘쳐났다. 미국인들은 초저금리의 돈을 빌려 소비했다. 돈은 또 전 세계의 부동산과 주식 가격을 끌어올렸다. 미국 부동산 가격 거품이 터지는 순간 글로벌 금융의 마술도 끝났다.

미국·일본 등은 두 번째 10년의 출발점인 2010년을 맞아 잃어버린 시대와의 작별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미국은 위기 이후 중국에 더 많은 소비를 주문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불균형은 그 조정 과정에서 환율을 비롯한 경제변수에 충격파를 일으키고 있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과 민간투자자들이 미국 금융자산의 보유를 기피할 경우 달러 급락과 미국 금리 급등 등으로 미국 경제가 타격을 입고, 그 영향이 세계 전체로 파급되는 경착륙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다. 불균형의 해소는 다가오는 10년의 과제다.
 
국가 GDP: 중국 7위→3위 급부상
지난 10년간 국내총생산(GDP) 20대 국가에서 탈락한 나라는 대만·아르헨티나·스웨덴 등 3개국이다. 이 나라를 대신해 새로 진입한 국가는 러시아·터키·인도네시아다. 돋보이는 나라는 중국과 러시아다. 1999년 중국의 GDP는 1조833억 달러로 세계 7위였다. 2009년엔 4조8330억 달러로 세계 3위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이미 지난해 일본을 제치고 2위에 오른 것으로 추정한다. 아직 14조27억 달러(2009년 추산)의 미국과는 차이가 크지만 미국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란 관측이다. 러시아는 2000년에 19위로 진입한 뒤 2009년(추산) 12위로 7계단이나 뛰어 올랐다.

일본의 정체는 수치로 확인된다. 미국에 이어 2위를 유지하긴 했으나 GDP 규모는 99년 4조3697억 달러에서 2009년 4조9929억 달러(추산)로 14.3% 증가하는 데 그쳤다. 중국은 같은 기간 무려 346.1% 늘었다. 한국의 GDP는 57% 증가했다. 순위는 12위에서 16위로 처졌다. 한국 앞으로 러시아·인도·호주·네덜란드가 밀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뒤를 돌아보면 터키 같은 신흥국이 따라붙고 있다.

미국은 부동의 1위였지만 위상은 이미 흔들리고 있다. 99년엔 미국 GDP가 2~20위 국가 GDP를 모두 합친 것의 절반을 넘는 54.3%에 달했다. 2004년엔 미국 GDP가 11조8678억 달러, 나머지 국가의 GDP가 18조8438억 달러로 이 비율이 63%까지 높아졌다. 하지만 지난해엔 45.8%로 뚝 떨어졌다. 향후 10년의 관전 포인트는 중국이 얼마나 추격할지 여부다.

포춘 500대 기업: 인도·러시아 약진
미국의 시사경제주간지 포춘은 매년 ‘포춘 글로벌 500’이라고 하는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을 발표한다. 여기에 포함되는 것은 기업의 영광이요, 기업이 속한 국가의 자랑이다. 몇 개 기업이 들어 있느냐로 국가경쟁력을 판단하기도 한다. 매출액이 많다고 꼭 우량기업인 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모아놓으면 개략적인 세계 판도를 파악하는 데 무리가 없다.

미국·일본·프랑스·독일 등 서열은 지난 10년간 큰 변화가 없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 기업의 수는 확 줄었다. 미국 기업은 2000년 185개에서 2009년 140개로, 일본 기업은 104개에서 68개로 각각 줄었다. 500대 기업의 매출 중 미국 기업이 차지하는 매출의 비중은 같은 기간 39.1%에서 30%로 감소했다. 일본 기업 역시 20.9%에서 11.8%로 거의 반 토막 났다.

또 다른 변화는 중국·인도·러시아 등 신흥국 기업의 약진이다. 중국은 2000년에 3개에 불과했으나 2009년 39개로 늘었다. 순위도 15위에서 5위로 껑충 뛰었다. 39개 중국 기업의 매출 비중은 6.6%다. 우리나라는 11개에서 14개로 늘었다. 제자리걸음에 가깝지만 후발국의 도전이 워낙 거세 그 정도로도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500대 기업의 국적은 2000년 28개에서 2009년 37개국으로 다양해졌다. 터키·오스트리아 같은 나라가 새로 얼굴을 내밀었다.

37개국 증시: 연평균 6.5%… 이머징 완승
새 천년의 첫 10년 주식시장 성적표는 그리 시원치 않다. 한국거래소가 조사한 주요 37개국의 대표 지수는 10년 동안 평균 87.7% 상승했다. 복리로 따지면 1년에 평균 6.5%씩 오른 셈이다. 2000년 1월부터 최근까지 국내 1년 정기예금 연평균 금리가 4.97%다. 원금 손실의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한 것치고는 적은 수익이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먼저 기준점이 너무 높았다. 99년 말은 정보기술(IT)주 거품이 미쳐 꺼지기 전이다. 2000년부터 전 세계 주식시장은 급강하했다. 많이 오른 곳일수록 그 정도는 심했다. 조사 대상에서는 빠졌지만 한국의 코스닥 지수가 대표적이다. 코스닥 지수는 2003년 3000포인트 돌파를 눈앞에 두고 급락했다. 전 세계 증시가 호황이었다는 2007년에도 850선을 넘지 못했다. 버블 후유증이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다른 하나는 2008년 가을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다. 10년 새 60% 하락한 그리스 증시가 그 예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진으로 재정적자 문제가 불거졌다. 국가신용등급은 하향 조정됐고 증시는 폭락했다. 2007년 11월 초 고점을 찍고 지난해 말까지 59% 떨어졌다. IT 버블이 꺼진 뒤 꾸준히 올랐지만 단 2년 만에 그간 상승폭을 고스란히 내놓은 셈이다.

이런 격변을 겪고도 주식이 예금보다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었다는 점을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은 “주식이 연 1.5%포인트밖에 잘하지 못한 것 같지만 복리로 10년 따지면 예금보다 25%포인트 수익률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예금이 원금을 절대 안 까먹는 안전자산 같지만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돈의 실질 가치가 줄어든다”고 덧붙였다.

국가별로 성적표를 뜯어보면 명암이 확연히 갈린다. 상승률 ‘톱10’ 국가 가운데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에 편입된 국가는 이스라엘 한 곳뿐이다. 그나마 이스라엘은 지난해 6월 새로 편입한 나라다. 러시아 증시가 37개국 중 상승폭이 가장 컸다. 러시아는 98년 모라토리엄(채무상환유예)을 선언했다. IT 버블 붐을 타고 증시가 오를 만한 여유가 없었다. 2008년 고점 대비 80% 하락하기는 했지만 99년 말 지수(175선)가 워낙 낮았기 때문에 10년 상승률이 700%를 웃돈다.

10년 전보다 증시가 하락한 12국 가운데 대만을 빼고는 모두 MSCI선진국 지수에 편입된 국가들이다. 특히 일본 증시는 80년대 말과 비교하면 80% 넘게 하락했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은 “80, 90년대가 선진국의 시대였다면 새 밀레니엄 첫 10년은 이머징 국가의 완승이었다”며 “다가올 10년도 중국·인도·인도네시아·브라질·러시아 등이 강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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