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이 뭐길래… 중국과 왜 다퉜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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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마늘 분쟁' 이니 '마늘 협상' 이니 하는 말을 많이 들었죠?

이는 우리나라 정부가 수입되는 중국산 마늘에 대해 세금(관세)을 높여 판매가격을 엄청나게 올려버린 데서 시작했습니다.

중국 정부도 이에 맞서 한국산 휴대폰과 폴리에틸렌(플라스틱.화학섬유를 만드는데 쓰는 석유화학제품)의 수입을 완전히 중단, 상황이 심각하게 된 거죠. 이후 두 나라 대표가 지루한 협상을 벌인 끝에 타협은 했지만 그 배경과 과정을 알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마늘은 우리나라 세 농가 중 한 농가 꼴로 재배하는 작물입니다.

해마다 30만t 정도가 생산되죠. '이모작' 이란 말을 배웠겠지만, 요즘은 겨울.봄철에 보리 대신 보통 마늘이나 양파를 키웁니다.

농민들은 5월말에서 6월쯤 마늘을 캐내 팔고는 바로 물을 대서 벼를 심죠. 이 때문에 과수원 등이 없고 논만 있는 농민은 마늘농사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1995년부터 중국산 마늘이 수입되기 시작했어요. 마늘은 우리나라와 중국.인도.미국.이탈리아 정도가 재배하는데, 전세계 1년 생산량(1천1백80만t)의 75%가 중국에서 나옵니다.

땅이 넓고, 인건비가 싸기 때문이죠. 특히 중국인은 마늘줄기(마늘쫑)를 주로 요리해먹고 뿌리격인 마늘 자체는 우리처럼 즐기지 않는답니다.

그래서 마늘값이 더욱 싸죠. 마늘 1㎏의 나라별 평균 가격은 우리가 3달러40센트로 제일 비싸고, 이탈리아가 1달러25센트, 미국이 약 1달러입니다.

그런데 중국은 31센트밖에 안됩니다. 가격만을 보면 중국마늘이 세계를 휩쓸 것 같고, 각국의 소비자도 값싼 중국마늘을 사는 것이 유리하겠죠. 하지만 생각해볼 점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농산물을 수입하는 것이 가격상 아무리 유리해도, 그 나라에 같은 농산물을 키우는 농민이 있으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특히 그 숫자가 많을 경우 사정은 더하지요.

"앞으로 그 농산물은 수입할테니 내일부터는 농사를 관두고 회사나 공장에 다녀라" 는 정치인이 있다면 농민들은 아마도 투표장에서 반대표를 무더기로 던질 것입니다.

이같은 정치적 문제를 떠나서 실제로 쌀과 같은 작물은 '식량 무기의 가능성' 때문에 재배를 완전히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이 결과 각국은 그 나라에서 안나는 농산물만 일부 수입하고, 같이 나오는 농산물은 수입을 금지하거나, 아예 높은 관세를 매겨 수입품가격을 높이는 정책을 주로 써왔습니다.

미국.중국.캐나다.인도.브라질.프랑스처럼 농산물을 값싸게 수출할 수 있는 나라들에서 불만이 컸지요. 그래서 각 나라가 모여 타협을 한 것이 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죠.

여기에서 공산품 수출국가들은 국가별.품목별로 좀 다르지만 일정물량(전문용어로는 최소시장 접근물량, MMA라고 합니다)의 농산물을 의무적으로 수입키로 양보 했습니다.

예컨대 쌀의 경우 우리나라는 95년 국내 소비량의 1%에서 시작해 2004년에는 4%까지 수입하고, 일본은 4%에서 시작해 8%까지 수입을 늘린다는 식이었죠. 이 때 우리나라는 마늘의 경우 통마늘(까지 않은 마늘)로 한해 수요량의 2~4% 정도(MMA)를 50%의 관세율만 매겨 수입키로 했습니다.

MMA를 넘는 물량부터는 3백60%라는 높은 관세를 매기기로 했지요.

당시에는 냉장.냉동마늘(깐마늘)과 초산마늘(절임마늘)과 같은 품목도 있었지만 오랫동안 저장.보관.운송하기가 힘들어 개방해도 수입되기 힘들 것이라고 판단해 30%의 낮은 관세만 매기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오판이었죠. 국내 수입업자들이 98년 중국 현지에 냉동창고와 통마늘을 까서 깐마늘로 만드는 작업장을 세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수입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통마늘로 수입해봐야 일정물량을 넘어서면 높은 관세가 매겨져 이윤이 박한 반면에, 중국에서 깐마늘 등으로 가공한 뒤 들여오면 관세도 낮아 엄청난 이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98년부터는 냉동.초산마늘 수입이 급증했고 국산으로 둔갑해 말썽을 빚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국내 농민들의 반발이 시작됐죠. 특히 지난해 여름 마늘 풍년이 들어 가격이 크게 떨어지자 농민들은 수입마늘에 화살을 겨누었습니다.

농협중앙회가 9월 무역위원회에 제소(피해구제 신청)를 했고 무역위원회.재정경제부는 오랜 조사활동을 벌인 끝에 6월1일 이른바 '세이프가드' (긴급관세 부과조치)를 결정했습니다.

30% 관세율이었던 냉동.초산마늘을 3백15%로 올린 것이죠.

예상대로 중국측은 반발했습니다. "마늘가격 폭락은 중국산 마늘 때문이 아니라 풍년으로 마늘이 남아돌았기 때문이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근거로 98년 중국 마늘수입이 늘었을 때도 한국 내 마늘가격이 여전히 비쌌던 점을 내세웠죠.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 "그것은 가격이 비싼 상황 속에서 수입이 늘어난 것" 이라고 맞섰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일주일 뒤 한국산 휴대폰과 폴리에틸렌의 수입을 잠정 중단한다는 보복조치를 발표했습니다.

이같은 보복조치는 국제규정에 어긋난 것이지만, 중국이 WTO에 가입하지 않아 어디에 제소하거나 중재를 요청할 데도 없었죠. 그래서 시작한 것이 두 나라간 마늘협상입니다.

우리로선 연간 5억달러가 넘는 휴대폰.폴리에틸렌의 중국수출을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게다가 중국도 보복조치가 국제규범에 어긋난 것인데다 한국 수출길이 막힌 중국 마늘농가의 원성이 이어졌죠.

결국 우리가 2만t정도의 마늘을 낮은 관세로 더 사주기로 하고 중국은 휴대폰의 수입중단을 푸는 선에서 타협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손해를 보았느니 어쨌느니' 하는 얘기는 아직도 많습니다.

물론 세계는 관세가 없는 자유무역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제 무역과 통상은 이처럼 서로의 이득과 손실을 주고받으며 이뤄지는 것임을 함께 염두에 둬야 할 것 같군요. '

이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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