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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내 인생 소리에 묻고 (24)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24. 푸대접 받는 고수

'일고수 이명창(一鼓手 二名唱)' 이라는 말이 있다. 판소리에서 고수의 몫이 명창에 오히려 앞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말은 현실적으로 명창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 고수를 위로하기 위해 입치레로 붙인 것일 수도 있다.

옛날에는 그까짓 고수쯤이야 하고 무시했다. 공연을 다니면 소리꾼과 고수에게 밥도 따로 먹이고 잠도 따로 재웠다.

소리를 하기위해 길을 떠나면 명창은 말이나 가마를 타고 의젓하게 가도, 고수는 하인처럼 북통을 짊어지고 걸어갔다. 공연이 끝나도 요즘 말로 출연료를 고수는 소리꾼의 절반도 채 못 받았다.

광대(소리)하다 안되면 가야금 병창, 그것도 안되면 땅재주나 줄타기, 그 다음으로 거문고나 가야금 단잽이(독주)를 했다.

그것도 시원찮으면 북채를 잡게 한다. 북도 제대로 못치면 '벼락맞아 죽을 놈, 똥장군이나 져라' 며 내쫓았다.

그래서 옛날에는 푸대접을 받는 설움을 견디다 못해 고수에서 소리꾼으로 나선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김득수.김동준 등처럼 소리를 하다가 목을 상하든지 해서 고수가 된다.

수종고수니 수행고수니 하는 전속고수를 두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특별히 고수를 가리지 않는 편이다. 명창은 고수를 탓하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명고수들이 차츰 사라져 소리 한 번 하려면 정말 답답하다.

고수 송영주(1920~92)는 고수가 갖춰야 할 요건으로 세 가지를 든다. 첫째 자세와 태도, 둘째 가락, 셋째 추임새다.

옛날에는 고수가 북을 잘 못치면 관객들 앞에서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김연수 명창은 고수에게 욕 잘하기로 유명했다. 웬만한 고수들에게도 "예이 상눔의 자식, 그 따우로 북을 치냐" 고 호통을 쳤다.

나도 선배 명창들이 그랬던 것처럼 무대에서 고수에게 욕을 한다. 그래서 고수들이 날 보면 '호랑이 만났다' 고 한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고수는 고수다.

"이 쌔려 죽일 놈아, 북 좀 잘 쳐라. "

"그렇지!"

"눈구녁을 쑥 뺄 놈이 대답은 잘 허는구나. "

"소리만 잘 혀봐, 북이 저절로 쳐지지. "

그러면 객석에서 웃음보가 터진다. 그게 판소리 하는 재미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요즘에는 여성 명창들이 많아져서 무대에서 고수와 욕지거리를 주고 받는 일은 좀처럼 볼 수 없다.

명고수가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기 때문인지 요즘 사람들은 고수를 두 손으로 떠받드는 것 같다.

특히 대학에서 그렇게 만든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국악계에서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대학교수들이다. 고법(鼓法)이니 뭐니 해서 북장단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뀐 것은 사실이지만 소리꾼이라면 모름지기 고수쯤 휘어잡을 수 있어야 한다.

북을 시끄럽게 치면 소리를 못 듣는다. 요즘은 너무 장단이 산만하다. 자기들은 잘 친답시고 하지만 가닥을 내야 할 때와 차분하게 칠 때를 구분할 줄 모른다.

서양음악에 비기자면 고수는 지휘자 겸 반주자인 셈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청중의 대표, 즉 평론가 역할도 한다.

요즘 들어 고수들이 큰 소리치는 것은 서양음악의 영향 때문인 것 같다. 지휘자는 '막대기 갖고 춤추는 놈들' 이다. 상놈들이 하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완창할 때 죽어나는 것은 고수다. 나야 흔들흔들 발림해가며 소리를 해대지만, 고수는 한자리에 꼼짝없이 앉아 북만 개패듯 패야 하니 어깨가 무너질 것이다.

69년 판소리 '춘향가' 완창무대에서 이정업.한일섭.김득수.김명환 등 당대 명고수 4명이 한 명씩 뒷간 드나들듯 번갈아가면서 북채를 잡았다. 말하자면 '1명창 4고수' 였다.

박동진 <판소리 명창>

정리=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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