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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노트] TV 연말 시상, 쇼를 하려면 제대로 하든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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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방송3사 연말 연기대상에서 ‘이변 없이’ 대상을 탄 고현정(MBC)·장서희(SBS)·이병헌(KBS·왼쪽부터).

지상파 방송 3사가 경쟁적으로 마련한 연말 연기·연예 시상식이 막을 내렸다. 올해에도 이변은 없었다. 연기대상 고현정(MBC)·이병헌(KBS)은 카메라가 이들의 참석을 확인해준 순간, 예견됐다. 장서희(SBS)의 수상 역시 유력한 후보 김혜수의 불참으로 '떼놓은 당상'이었다. 유재석과 강호동, 그 누가 더 연예대상을 많이 타느냐가 시상식의 유일한 ‘관전 포인트’였다.

그래도 3사에서 워낙 두드러지게 활약한 이들이니 공정성을 문제 삼는 이는 별로 없다. 시청자들도 이것이 ‘연기상’이라기보다 그 해 방송사 시청률에 기여한 ‘공로상’이란 것쯤은 이제 다 안다. 문제는 그게 너무 많다는 거다. MBC는 대상과 PD상을 제외한 거의 전 부문에서 공동수상을 남발했다. 연기상을 일일·미니·중편·장편(KBS)으로 나눠 주거나 특별기획·드라마스페셜·연속극(SBS)으로 쪼개는 것도 관행이 됐다. ‘베스트’ 혹은 ‘최우수’라는 말이 무색하다. 게다가 ‘참석자=수상자’가 너무 티가 나서 웬만한 수상자(공동수상까지 포함해서!)는 예측할 수 있었다. 자연 긴장감이 전혀 없는 180분짜리 수여식이 돼버렸다.

게다가 이 황금시간대 프로그램이 준비한 ‘콘텐트’가 후보자들과의 말장난과 축하공연, 수상자의 소감뿐이란 건 놀라울 정도다. 특히 수십 명의 수상자들이 토해내는 천편일률적인 소감은 ‘예견된 수상’치곤 성의가 부족했다. (혹은 ‘준비한 소감’이기에 그런 걸까) 시청자·가족에 대한 감사인사야 나무랄 수 없다. 제작스태프에게 공을 돌리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여기에 빠지지 않는 게 외주제작사 혹은 소속기획사를 거론하며 관계자들을 칭송하는 것이다. 공공재인 생방송 전파를 이용해 버젓이 ‘기업 PR’을 하는 셈이다. 부문별 공동 수상이 늘어난 게 이 PR을 노린 제작·기획사의 로비 때문이라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매년 공동시상식 개최 요구가 나오지만 방송사 입장에선 연말 광고를 보장해주는 ‘효자 프로그램’을 포기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 해도 각 프로마다 두 달씩 전담팀을 꾸려 뽑아낸 결과가 이뿐이란 건 인력 낭비에 가깝다. 이런 점에서 돋보인 것은 KBS 연예대상(연출 김광수)이었다. 축제를 실감케 하는 공들인 세트에다 후보자들도 역할 바꾸기를 통한 ‘개인기’를 과시했다. ‘개그콘서트’의 ‘남보원’(남성인권보장위원회)을 패러디한 ‘전인권’(전국예능인인권보장위원회) 코너에선 강호동·유재석 독식 체제에 촌철살인 유머를 날렸다. 허울뿐인 권위보다 프로그램의 재미에 충실했던 셈이다. 이왕 쇼를 하려면, 제대로 잘 짜여진 ‘쇼’를 해달라.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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