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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오만과 편견’ 넘어서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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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런 식으로 일본은 뭐든 일본을 중심으로 한국을 재려고 한다. 일제 때는 더욱 심했다. 일제는 강화도조약(1876년)을 계기로 한국 병탄(1910년)을 착착 진행하면서 한국에 대한 편견 만들기에 열을 올렸다. 한국은 식민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펴기 위한 것으로 언론과 지식인들을 대거 앞세웠다. 갑신정변(1884년) 직후 후쿠자와 유키치가 쓴 『탈아론(脫亞論)』은 이런 흐름의 절정이었다. 1만 엔권 얼굴인 그는 “이웃의 개명을 기다려 함께 아시아를 일으킬 여유가 없다. 이웃이라 봐줄 것이 아니라 서양인의 방식에 따라 대해야 한다”고 대중을 선동했다. ‘근대 일본의 아버지’의 이런 주장은 식민 조선을 바라보는 일본인의 보편적 인식이 됐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선 올해 ‘강제합병 100년’에도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 분위기다.

그 저변에는 책임 회피와 오만이 있다. 10대 소녀 때 강제 노동을 한 할머니들에게 연금이라면서 99엔을 주고 농락한 것이나, 독도가 고유한 일본 땅이라고 중학교에 이어 고교에서 가르치기로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비빔밥은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음식”이라고 폄훼하는 것도 뒤틀린 시각과 편견과 오만의 전형이다. 이런 행태로 봐선 한·일의 미래를 결코 일본의 선의에만 맡길 수 없다는 걸 새삼 느낀다. 한국의 단점만 부각시키던 근대 일본의 부정적 한국관(觀)이 의외로 뿌리깊기 때문이다.

일본은 과거사는 거론할 필요가 없고 중요한 것은 현재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과거는 앞 세대의 잘못이므로 현 세대의 책임이 아니라는 논리다. 한류 열풍은 그런 이중성의 한 측면이기도 하다. 열기가 뜨거운 나머지 지난해 한국을 찾은 일본인 관광객은 처음으로 300만 명을 돌파했다. 이들의 발걸음은 서울을 벗어나 지방으로 뻗치고 있다. 백제와 신라는 천년 고도라면서 고가 유럽상품을 뺨치는 16만 엔짜리 여행 상품도 나왔다. 한류를 통한 일본인의 ‘한국 재발견’이다. 한국에 가면 세계문화유산, 레저와 휴식, 맛있는 한식이 있다는 인식이 바람을 한층 부추겼다.

이런 분위기가 과거사 청산을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하토야마 담화’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도 낳고 있다. 그렇더라도 편견과 오만이 쉽사리 사라질 것으로 보는 것은 무리다. 한류가 가능성을 보여준 것처럼, 더욱 매력적이고 더욱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것만이 일본의 진정한 존중을 받는 지름길이다.

김동호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