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정책과정 미국·일본 비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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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94년 초 '프라이드 폭행사건' 이 한때 화제에 올랐다. 외국유학 중 일시귀국한 '오렌지족' 학생들이 서울 시내에서 고급차를 몰고 가다 조그만 프라이드가 앞을 가로막는다는 이유로 운전자를 집단폭행한 사건이었다.

대기업 부회장의 장남, 3공 실력자의 손자가 가해자여서 사회적 비난도 거셌다. 재미있는 것은 김영삼(金泳三)당시 대통령까지 청와대 회의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철저히 조사해 처리하라" 고 지시한 점이다.

아무리 사회적 관심이 쏠린 사건이라지만 폭행사건에까지 시시콜콜 지침을 내리니 대통령에게 '검찰총총장' 이란 별명이 붙은 것도 우스개만은 아니었다.

대통령이 웬만한 일에 두루 개입하고 '국민정서법' 이 모든 법에 앞서는 모양새는 지금도 비슷하다. 때문에 김영삼 정부는 취임 1년 사이에 대국민사과를 네번이나 했고, 요즘 각종 분규현장에서는 "장관말고 대통령 나오시오" 소리가 빠지지 않는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의 고이케 히로쓰구(小池洋次)국제부장이 지난해 말 펴내 화제를 부른 저서 '정책형성의 일.미(日.美)비교' 는 미국과 일본의 의사결정 과정을 낱낱이 분석하고 장단점을 비교해 놓았다.

그는 정치적 임명제도가 확립된 미국의 장점으로 ▶민간인 두뇌 활용이 활발하다▶정책변경이 신속.용이하다▶관청의 정보를 민간도 공유한다▶정책결정 과정이 투명하다▶학계 풍토가 실용적이다▶국제경쟁력이 높다는 점을 들었다.

반면에 ▶정책의 계속성이 일본에 비해 처진다▶엽관(獵官)운동이 심하다▶기밀유지가 잘 안된다▶정치가 관(官)을 압도한 탓에 정책이 특정그룹의 입김에 좌우되기 쉽다는 등의 약점도 있다고 강조했다.

"의사결정의 프로세스를 바꾸지 않는 한 아무리 사람을 갈아봐야 변화나 개혁은 기대하기 힘들다" 고 고이케는 지적했다.

위계질서나 역학관계에 따른 한국의 '톱-다운' 식 의사결정 구조는 비단 정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볼보그룹 국내계열사의 에릭 닐슨 사장도 지난주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인 임직원은 업무능력은 세계 최고수준이나 직급간 계급의식이 너무 강하다" 고 지적한 것을 보면 우리의 의식구조.문화에 근본요인이 있는 듯하다.

임박한 개각을 앞두고 '누구를 쓸까' 에 더해 '어떻게 쓸까' 도 한번쯤 심사숙고할 때다.

노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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