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서 '문화와 진리' 이해 돕는 몇가지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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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레나토 로살도의 주장이 쉽게 체감되지 않는다면 고전적 인류학의 한 거장과의 비교가 효과적인 처방일 수 있다.

'문화의 유형' 을 쓴 루스 베네딕트. 그의 핵심 개념은 모든 문화에는 각자 독자적인 패턴(유형)이 있으며, 이 것들은 자기 완결적인 모습을 띈다는 것이다.

문제는 고전적 인류학이 패턴을 강조하다 보니 어떤 유형에서 벗어나 다소 애매한 접경지대의 모습은 애써 지우려했다.

레나토 의 설명대로 '에이, 그건 성가신 예외일 뿐이야' 하는 식으로 무시하려 했던 영역이다.

중요한 점은 바로 이 경계, 접경지대에서 요즘 현대사회의 많은 갈등과 불평등의 문제들이 발생하거나, 아니면 여기서 부딪치며 나오는 창조적인 열매들이 적지 않다는 측면이다.

따라서 레나토의 주장은 인류학 등 사회과학들이 이런 제1세계와 제3세계의 갈등 같은 접경지대에 서야 옳다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이를테면 우리 한국사회의 점점 커지는 지역갈등, 남녀 성차, 세대간 문제도 그런 '경계' 에 속한다.

바로 그 점에서 '문화와 진리' 는 결코 현학적이거나 고답적인 책이 아니고, 우리네 삶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 내는 목소리인 셈이다.

또 흥미로운 점은 레나타는 미국학계 주류 인물이라는 점. '알제리의 프란츠 파농 같은 목소리를 내는 인류학자' 가 현재 미국 인류학의 거물급이라는 점은 얼핏 역설로 들린다.

하지만 생각을 해보라. 언어학자이면서 주류질서에 독한 지적을 마구 해대는 노암 촘스키도 미국학계의 사람이다.

삐딱한 좌파 성향의 사회과학자 월러스틴도 그런 인물이다.

겉으로 보기에 보수 일변도로 보이는 미국사회 내부에는 이런 거물급의 이단아들이 있고, 바로 이들이 미국사회의 건강함을 담보하고 있지 않은가 싶은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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