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내 인생 소리에 묻고 (1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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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19. 판소리 '예수전'

"어화 세상 사람들아/이내 한말 들어보소/우리 주님 부활하셨네/십자가상에 매달려/창칼에 찔리신 우리 주님…"

"죽음 속에서 살아나셨네/우리 주님 부활하셨네/할렐루야 얼씨구 좋다/ 할렐루야 절씨구/할렐루야…" (판소리 '예수전' 중에서)

아마 내가 소리하는 모습을 일반 공연장이 아닌 교회나 기독교계 학교에서 본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내가 기독교에 귀의하고 또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게 된 것도 1970년대의 일이다.

지금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장로의 위치까지 올랐지만, 사실 우리 집안은 불교를 믿었고 나는 무교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 완창 판소리로 이름을 얻은 지 얼마 안 되어 기독교 방송에서 연락이 왔다.

그저 '방송사 한 군데서 보자는 거겠거니' 하고 별 생각 없이 나갔는데 기독교방송 시청각교육국장이라는 조향록 목사와 극작가 주태익씨가 대본을 하나 내밀더니 느닷없는 부탁을 했다.

내용인즉슨, 그 대본을 가지고 나보고 방송에서 판소리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뭔가 싶어 대본을 들여다봤더니 맨 처음 나오는 대목이 성탄절을 앞두고 예수탄생을 기뻐하며 찬양하는 내용이니 그 당시로서는 황당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니, 기독교 신자도 아니고 또 불교 집안인 나에게 이런 걸 하라니, 당신들, 제 정신이오?"

마구 화를 내고 보니 그래도 점잖은 사람의 부탁인데 한번 살펴보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본을 찬찬히 읽다 보니, 인류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버린 예수의 위대함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는 오히려 내가 더 적극적으로 변해 직접 대본도 써 가며 5시간짜리 판소리 '예수전' 을 완성하게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예수전' 은 10회에 걸쳐 기독교 방송으로 나갔는데 처음에는 항의가 빗발치기도 했다.

항의 중에서는 "예수님의 생애를 판소리로, 무슨 타령으로 부르느냐" "신성 모독 아니냐" 는 등의 극한 내용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회를 거듭할수록 "성서를 우리 소리로 들으니 더 감동적이고 친근하다" "이렇게 힘든 일을 해 주셔서 감사하다" 는 격려를 받게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예수전' 은 KBS를 통해 전국적으로 방송된 후 더 큰 반응을 얻게 되었다. 전국의 교회와 학교를 순회하며 공연을 다녔는데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광주에 있는 한 기독교계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일로, 공연을 시작하는데 어째 분위기가 이상했다.

학생들이나 교사들이나 거의 강제로 공연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예정된 공연이니 안 할 수는 없었다. 차츰 소리를 하면서 보니 점점 분위기가 풀리는 듯 했고 나중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공연이 끝난 후 교장이 와서 말하기를 자기는 판소리를 '놀고 먹는' 짓으로 생각해 예수의 생애를 판소리로 한다는 것에 대해 별로 좋지 않게 보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 소리를 듣고 보니 오히려 교회가 국악을 몰아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우리의 판소리를 통해 기독교 신앙을 알리는 것이야말로 국악 발전을 위해서나 전도를 위해서나 내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예수전' 의 성공에 따른 교회 안팎의 격려에 힘입어 이후 나는 판소리 '신약 성서' '구약성서' '팔려간 요셉' '모세전' 등도 만들게 되었으며, 정식으로 세례를 받고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나는 요즘도 주일이면 꼭 교회에 나가고, 성서를 항상 손에 닿는 위치에 두고 시시때때로 읽으면서 신앙심을 다지고 있다.

박동진 <판소리 명창>

정리〓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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