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도입했던 북 7·1 조치 노동당·내각 권력투쟁으로 불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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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경제난 타결을 위해 인센티브 제도 등 시장경제 요소 도입을 시도했던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조치가 내각과 노동당의 권력 투쟁에 따라 불발로 끝났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기범 전 국가정보원 3차장(북한 담당)은 29일 경남대 대학원에 낸 박사학위 논문 ‘북한의 경제개혁과 조직·관료정치’에서 이같이 밝혔다.

한 전 차장은 논문에서 “(7·1 조치를 주도한) 내각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해 온 당이 2005년부터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 결국 내각의 주도 세력을 축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05년 3월 열릴 예정이던 최고인민회의 11기 3차 회의가 한 달가량 돌연 연기된 것도 시장경제 도입을 둘러싼 당·정 갈등에서 비롯됐다”며 “2005년 봄 당·정 회의에서 박봉주 내각 총리가 당 원로들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박 총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직접 최고인민회의를 한 달 연기할 것을 건의했다고 한다.

한 전 차장은 “당시 김정일은 대담한 개혁을 주문하며 당과 군의 생산·무역 활동 일부를 내각에 이관하고 총리에게 인사권과 경제관리 문제에 대한 총괄 검토권을 부여했다”며 “그러나 당이 김정일을 설득해 내각의 경제정책 주도권을 회수한 뒤 대대적인 내각 검열을 벌여 개혁 성향의 간부들을 몰아냈다”고 덧붙였다. 박봉주 전 총리와 다수의 내각 상(장관)들은 2006년 초 퇴진했다.

그는 “김정일은 경제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경제 개방을 추진하면서 내각의 권한을 강화했으나 당·정 갈등이 빚어지자 결국 당의 손을 들어줬다”면서 “이런 사례를 볼 때 김정일의 ‘유일한 결론’에만 몰두하지 말고 여러 조직이나 관료들의 행태와 정치 활동에 대한 관심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차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7·1 조치로 상징되는 북한의 경제개혁 실험은 현재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갔다고 봐야 한다”며 최근 단행된 화폐개혁과 올해 대폭 강화된 북한 내 종합시장 단속을 대표적인 역개혁 사례로 꼽았다. 그는 또 “북한은 노동당의 득세 속에 원래 지난해 화폐개혁을 할 계획이었지만 김정일이 쓰러지면서 1년간 미뤘다”며 “북한은 2002년에도 화폐개혁을 하려 했지만 7·1 조치의 실효성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돼 보류했다”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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