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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배울까 두려운 '스승들 선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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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2위 득표자는 낙선, 3.4위 득표자는 당선' .

상식적으로 납득이 잘 안가는 이런 선거 결과가 요즘 서울 시내 사립학교 현장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학교 살림을 제대로 꾸려나가고 있는지 살피는 학교운영위원 선거에서다.

지난 7일 서울 S고에서 열린 학운위 교원위원 투표 결과 30여명의 교직원 가운데 13표와 10표를 받은 교사 대신 8표와 5표를 받은 부장교사가 교원위원이 됐다.

K중에서도 31명이 참여한 교원위원 선거에서 18표를 얻은 교사는 떨어지고 최하위 득표를 한 교사가 교원 위원에 올라 교사들의 반발을 샀다.

이처럼 득표 수와 거리가 먼 선거 결과가 나타난 이들 학교의 교장은 "교직원 회의에서 득표를 한 교사들 중에서 경력 등을 따져 교원위원으로 위촉했을 뿐" 이라며 "위촉 권한은 교장에게 있다" 고 주장했다.

S고의 한 교사는 "교사들의 선거가 학교 성적과 관계 없이 다수 득표자를 학급회장으로 뽑는 학생들의 선거보다 못하다" 고 꼬집었다.

이런 현상은 이들 학교 외에도 서울시내에서만 20곳 가까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집계하고 있다.

지난 7일 실시된 충남 교육감 선거에서는 학부모 등에게 음식을 제공하다 지역 선거관리위원회에 적발돼 검찰에 고발된 후보가 선거에서 승리했다.

오는 26일 열릴 예정인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는 투표권을 지닌 교장들이 동창회를 열어 후보자를 단일화하는 세(勢)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 담긴 특정 후보 비방 유인물이 학교에 공공연히 뿌려지고 있다.

서울시 선관위 관계자는 "교육경력 5년 이상의 교육자들이 벌이는 선거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혼탁하다" 고 전했다.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는 선거와 관련해 "대표자가 되려고 출마하는 사람은 법을 지키겠다는 마음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고 쓰여 있다.

학교는 '민주주의의 산 교육장' 이라는 말도 있다. 참교육 학부모회 박인옥 사무차장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따로, 현실 따로인 이러한 교육자들의 선거판이 아이들에게 해악을 끼칠까봐 걱정된다" 며 "최소한 정해진 룰은 제대로 지켜야 하지 않느냐" 고 반문했다.

강홍준 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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