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쏘공' 다시 개작해 펴낸 조세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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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젊은 시절에 인간의 진짜 척추라고 믿고 애써 간직하려고 했던 귀한 가치들, 그리고 개개인의 마음 속 소유인 아름다운 정신을 부양 가족 거느린 가장이 되며 밖으로 던져버리는 일은 흔했다. 나는 이 말을 아주 슬픈 마음으로 쓰고 있다. "

조세희(58)씨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을 개작해 출판사를 옮겨 최근 펴냈다. 줄여 '난쏘공' 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이 작품은 1978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돼 지금까지 1백34쇄라는 한국문학 사상 가장 많이 찍은 기록을 경신하며 한 해 2만권 가량 씩 꾸준히 읽히고 있는 우리 시대의 고전. 이 작품을 아들이 경영하는 신생출판사 이성과힘에서 다시 펴낸 조씨는 "지금 아주 슬프고 우울하다" 며 어렵게 기자와 만나주었다.

"22년간 이 작품을 잘 지켜준 문학과지성사에 우선 고맙습니다. 나는 소설 속 주인공들인 난쟁이 일가에 늘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항상 내 옆에서 허리를 쿡쿡 찔러대며 어서 일어나 일하라고 시키는 힘으로 존재합니다. 아직도 사회에서 소외 당하고 핍박 받는 난쟁이 가족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잘 할수 있는 글로, 작품으로 지켜주라고 난쟁이 가족은 조르고 있습니다. "

'난쏘공' 을 새롭게 펴내면서 조씨는 어떻게 손봐야할 것인가로 많은 고민을 했다. 이 작품이 12편의 단편 연작으로 된 것은 70년대 유신치하의 폭압적 분위기가 차분하게 장문을 쓸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화적.상징적.지성적 기법을 두루두루 동원해가며 난쟁이로 대표되는 소외계층의 삶을 묘파하면서 사회정의을 추구한 것도 당대의 검열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래 이 작품을 독자의 손으로 오롯이 전하기 위해 작가 자신의 검열로 빼놓았던 부분부분들을 되살려 놓을까 말까를 고민하다 결국 한 부분만을 보충해 놓을 수 밖에 없었다.

시대가 낳았고 또 지난 22년간의 독자들이 이리저리 해석, 감동해 읽으며 완성한 작품이 '난쏘공' 이란 판단에서다. 그래도 보충해 넣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 말이다.

"자본주의의 달콤한 이익이 도덕적으로 가장 타락한 자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행복을 가차없이 짓밟고 한순간도 고민하지 않을 동물 닮은 자본주의와 그 공범자들에게만 돌아간다. (중략) 하루하루 열심히 혁명을 준비하며, 그러나 오늘도 오지않은 그 혁명을 지치지도 않고 기다리는 자들. "

노동운동을 하던 난쟁이의 큰 아들이 재판정에서 사형선고를 받는 장면에 작가가 굳이 살려놓을수 밖에 없었던 말이다. 그리고 이 작품 전체에서 '근로자' 를 본래의 말을 찾아 22년만에 '노동자' 로 바꿨다.

아주 느리게라도 우리 사회는 이만큼 발전해왔다며. 그럼 '오늘도 오지 않은 그 혁명' 이란 무엇인가. 조씨는 혁명을 "인간적인 삶을 파괴하려는 힘에 침묵하지 않는 양심과 지성" 이라 말한다.

"지난 세대 펄펄 끓어넘치던 그 혁명이 지금은 모두다 어디로 갔느냐" 고 조씨는 괴롭게 묻고 있다.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하게 체제에 편입돼 잘 살아가고 있는 지성이 어떻게 시대의 양심을 대변할 수 있느냐" 고 부르르 떨며 반문한 조씨는 우리 시대 지식인들의 군상을 그리며 지성의 참모습을 찾는 장편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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