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선 OK, 의사가 재면 고혈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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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추워지면서 고혈압으로 인한 뇌졸중·심장병 환자가 늘고 있다. 현대인에게 혈압 관리만큼 건강에 미치는 효과가 큰 것도 흔치 않다. 고혈압 환자가 수축기 혈압을 2㎜Hg만 감소시켜도 심장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 7%, 뇌졸중으로 인한 사망률 10%가 줄어들며, 혈압을 5~6㎜Hg 낮추면 뇌졸중에 걸릴 위험을 42%나 감소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2007년 국민 건강영양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30세 이상 성인의 25.6%가 혈압이 높게 측정되거나 혈압 약을 복용 중인 고혈압 환자다. 나이가 들수록 고혈압이 증가해 60대에는 46%, 70세 이후엔 59%가 고혈압 환자라고 한다. 그러나 고혈압은 합병증이 생기기 전에는 증상이 거의 없어 자신이 고혈압인지를 모르거나 안다고 해도 치료받지 않는 분이 적지 않다.

흔히 수축기 혈압이 140㎜Hg 이상이거나 이완기 혈압이 90㎜Hg 이상이면 고혈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낮에 잴 때의 기준일 뿐이다. 혈압은 하루 중에도 계속 바뀐다. 아침에 높고 오후에 낮으며 특히 야간에는 혈압이 10~20% 감소한다. 따라서 밤에 잠을 자는 동안의 혈압 평균이 125/75㎜Hg 이상일 때, 또 하루 24시간 동안의 평균 혈압이 135/85㎜Hg 이상일 때도 고혈압이라고 한다.

그러면 이들 혈압 중에서 어떤 게 더 중요할까. 고혈압 합병증(심장병·뇌졸중 등)의 발생을 고려하면 진료실에서 측정한 혈압의 평균보다는 집에서 잰 혈압의 평균이 더 중요하며, 집에서 잰 혈압 평균보다는 24시간 평균 혈압이 더 중요하다. 최근에는 수면 중 고혈압이 심혈관 질환 발생에 가장 관련성이 크다는 보고도 있다. 가장 좋은 것은 언제나 모든 혈압이 안정적으로 관리되는 것이다.

진료실에서 고혈압을 진단할 때는 최소한 2~3회 이상 방문해 세 번 이상 잰 혈압의 평균을 기준으로 한다. 물론 고혈압의 합병증이 있는 경우라면 한 번 측정한 혈압만 높아도 고혈압으로 생각하고 바로 관리에 들어갈 수 있긴 하다. 하지만 혈압은 하루 중에도 변동이 있을 뿐 아니라 같은 시간대에도 처음 잰 혈압보다 두 번째 잰 혈압이 낮게 나오며, 첫날보다 다음 번 방문 시에 혈압이 낮게 측정된다. 한 연구에 의하면 새로운 의사에게 처음 방문해 측정한 혈압과 3회째 방문 때의 혈압을 비교해 보면 치료하지 않고도 수축기 혈압은 15㎜Hg 정도, 이완기 혈압은 7㎜Hg 정도 감소한다고 한다.

진료실에서 측정한 혈압은 140/90㎜Hg 이상으로 높은데 진료실 외의 장소에 측정한 혈압의 평균은 135/85㎜Hg를 넘지 않는 경우를 ‘흰 가운 고혈압’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같은 흰 가운을 입었어도 간호사보다 의사가 잰 경우 혈압이 더 높게 나온다고 한다. 환자에게는 의사보다는 간호사가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이러한 흰 가운 고혈압은 병원에서 고혈압이라고 진단받는 사람의 10~20%에 이를 정도다. 그렇지만 처음 잰 이완기 혈압이 105㎜Hg를 넘는 경우라면 이러한 가짜 고혈압일 가능성은 5% 미만이다.

반대로 진료실에서는 혈압이 정상으로 측정되는 고혈압 환자도 전체의 5~20%나 된다. 사업장을 방문해 직원들의 혈압을 재 보면 반복해 혈압이 높게 측정되는 데도 병원에서 잰 혈압은 정상이었다며 방문한 의사를 돌팔이처럼 핀잔을 주는 사람이 있다. 이는 평상시의 혈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르는 무지에서 나온 결과로 생각된다. 이런 경우 시시비비는 병의원을 방문해 24시간 혈압을 측정하는 기기를 달아 보면 가려지게 마련이다.

경희대 의대 교수 가정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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