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나이' 강연 내용] "한·미 동맹관계 유지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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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동북아시아는 지난 몇 십년간 지구상에서 경제 활동이 가장 활기찬 지역이었다.그중에서도 한국은 엄청난 성공사례다.이 성공을 유지하기 위해선 확고한 안보의 틀을 마련하는 게 관건이다.

특히 이 지역은 냉전기간 동안 유럽처럼 잘 짜여진 국제 안보기구와 제도를 갖추지 못했다.프랑스와 독일 사이에서 있었던 화해와 협력은 중국과 일본간에는 이뤄지지 않았다.그 결과로 냉전시대가 끝나가는 시점에 동북아에서 해묵은 역사적 갈등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소련이 붕괴한 뒤 이 지역에선 미국이 압도적인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많은 아시아인들은 미국의 존재가 아시아 경제 기적을 지탱하는 정치적 안정을 이뤄냈다고 믿고 있고,그래서 이 지역에서 미국 영향력을 용인하고 있다.하지만 이같은 안정세가 앞으로도 계속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세계 전체 세력분포 상황을 점검한 뒤,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들을 알아 보고,중국의 부상과 한반도 최근 상황을 살펴본다.

◇변화된 세계=소련은 사라졌고 미국은 군사·경제·정치 등 모든 면에서 세계 유일한 초강대국이 됐다.그렇다고 해서 냉전시대의 양극 체제가 단극 체제로 대체된 것은 아니다.

현재 국제 세력 균형은 복잡한 3차원 체스게임에 비유할 수 있다.맨 위 체스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군사력 게임은 단극 체제라고 말할 수 있다.미국은 세계 어디에나 배치할 수 있는 대규모 첨단 육·해·공군력을 가진 유일한 국가다.

중간 체스판의 경제력 게임은 미국·유럽·일본의 3극 체제다.

맨 아래 체스판에선 정부의 통제 밖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초국가적 세력들이 다투고 있다.금융업자와 테러리스트처럼 다양한 주자들이 활동하는 이 부분에서는 아무도 지배적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정보혁명의 첨단을 달리고 있기 때문에 세계에서 유일하게 가장 막강한 국가로 남을 것이다.그러나 미국도 혼자 힘으로는 모든 국제적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미국이 모든 분쟁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요건을 전부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미국은 국제적 연합체를 동원해야만 한다.

◇미국이 선택 가능한 정책들=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동북아에 대한 거시적인 전략은 다음 다섯 가지다.

첫째는 미군 철수 및 대서양권(Atlantic)과의 파트너십 추구다.장래에 문명 충돌이 있을 것으로 내다보는 사람들은 이 정책을 선호하지만 대가도 크고 실현 가능성도 작은 전략이다.

둘째는 지역 세력의 균형 창출이다.미국은 일본과의 공식 동맹 관계를 철회하고 이 지역 양대 강국인 중국과 일본 사이에 힘의 균형이 형성되도록 유도할 수 있다.그러나 이는 일본의 군사 재무장을 초래하고 동북아 지역 군비경쟁에 불을 붙일 가능성이 크다.

셋째는 지역 안보기구를 설립하는 것이다.지역 안보기구는 매우 취약하게 시작되기 때문에 제 자리를 찾기까지는 길고 험난한 세월을 보내야 한다.이 전략만으로는 아시아 안정을 위한 충분한 안전장치가 되지 못할 것이다

넷째는 중국을 봉쇄하는 연합을 형성하는 것이다.이 전략은 성공할 수 없다.고립 정책보다는 경제 성장과 국제사회 참여 유도가 자유화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이 정책은 중국이 책임있는 지역 세력이 될 가능성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다섯째는 일본과 공식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중국과는 정상 관계를 추구하는 것으로 가장 바람직한 전략이다.이 전략을 택하면 중국이 미국에 대항한다든가 미국을 이 지역에서 몰아내려 할 수 없게 된다.또 미국은 중국이 강해지더라도 정상적인 국가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이는 한국을 위해서도 가장 좋은 전략이다.한국이 미국과 동맹 관계를 유지한다면 과거처럼 중국이나 일본 중 어느 한쪽이 한반도를 강점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도전=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미국인이 적지 않다.일부는 중국 부상을 1차대전 전 독일의 경우에 비유하기도 한다.그러나 이는 과장된 것이다.

중국은 빠르게 경제 성장을 이룩하고 있지만 국영기업의 비효율 문제와 불안정한 금융 시스템,위안화 가치 문제 등 장애물을 안고 있다.중국이 본질적인 개혁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그와 같은 불안 요인들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소득불균형이 확대되면서 경제성장이 크게 둔화될 수도 있다.

군사력도 크게 증강되겠지만 미국의 상대가 되기는 힘들 것이며,미군이 동아시아에 주둔하고 일본과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한 지역적 헤게모니를 행사하지도 못할 것이다.미·중 관계에서 가장 큰 위험은 대만에 대한 오판이다.중국에선 공산주의가 민족주의로 대체되고 있으며 신세대들까지도 대만이 중국의 일부분으로 쟁취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고 있다.

◇한반도=북한의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한국을 방문키로 한 것은 북한 전술의 극적인 변화다.그런 점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평양 방문은 실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또 북·미 협상에서 북한이 미사일 실험 중단에 동의한 것은 환영할만한 성과였다.이 합의엔 양측이 협정을 쉽게 번복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평양 정상회담 이후 추가적인 진전이 이뤄지면 북·미 양측이 그같은 행동을 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남북 관계 진전에는 세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첫째는 북한이 점차 중국 스타일의 개혁을 추진하고 외부 세계에 대한 개방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룩하는 것이다.그렇게 되면 시민사회가 발전하고 나약한 형태의 정치 동맹도 가능해질 것이며,약한 형태의 연맹이 정치적 연방으로 바뀌는 과정을 거치면서 통일이 완성될 것이다.

두번째 시나리오는 북한이 이번에도 한국을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떼어놓으면서 세 나라로부터 지원을 획득하려 하는 것이다.이 경우 일단 한국내에 통일 분위기를 고조시킨 뒤 미군철수와 한·미 안보조약의 폐기를 요구할 것이다.

또 한 가지 시나리오는 북한이 개방을 거부하거나 결국 붕괴로 이어지는 경우다.

이 세가지 시나리오 중에서 첫째와 같은 희망적인 결과가 나오도록 하려면 노련한 기술과 인내,그리고 우방국들 간의 긴밀한 의견교환과 조정이 필요하다.

◇결론=동북아 안정과 안보의 보증자로서 미국의 역할은 계속될 것이다.그것이 미국의 국익에 크게 부합되기 때문이다.미국은 대량 파괴무기의 확산 및 테러·인권·환경 등 다양한 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있으며,세계 경제에서 가장 역동적인 곳인 이 지역에서 이득을 취하려 한다.

중국을 정상적인 국가로 이끌어 내는 동시에 일본·한국과 동맹을 추구하는 것은 미국의 장기적이고도 현명한 전략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대만 문제를 기술적으로 다뤄야 할 것이며 이같은 주의는 한반도에서 점진적인 통합과 통일을 이끌어내는 데도 마찬가지로 요구된다.

한국 입장에서도 미국과 장기적인 우방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현명한 전략이다.한국이 한반도의 통일을 이루려는 과정에서 초강대국과의 동맹을 희생시키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된다.

정리=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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