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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17년째 교통정리 김윤덕 할아버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서울 서초구 잠원동 영동사거리에서 강남고속터미널로 가는 길. 그렇잖아도 좁은 데다 지하철 공사 때문에 파헤쳐진 도로는 사람과 차가 뒤엉켜 난리도 아니지만 그래도 입가에 미소를 띠게 하는 사람이 있다.

김윤덕(金潤德.70)할아버지. 동네 사람이나 매일 아침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할아버지는 유명인사다.

"아침 6시부터 9시까지,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매일 교통정리를 합니다. 공사에다 워낙 다니는 차가 많아 정말 위험하거든요. "

차들이 뒤엉켜 엉망진창인 곳이지만 金할아버지의 호루라기 소리와 손짓 하나면 집채만한 버스도 재깍 서고 건널목에서 언제나 길에 발을 들여놓을까 눈치만 살피던 사람들도 안심하고 길을 건넌다.

金할아버지가 교통정리 봉사를 시작한 것은 16년 전인 1984년. 큰 아들이 횡단보도를 건너다 영업용 택시에 부딪쳐 중상을 입고 5년간 투병생활을 거친 뒤다.

"내 자식이든 남의 자식이든 모두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봉사를 시작했죠. 길을 건너는 모든 사람을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

꼬마들이 있으면 손을 꼭 붙잡은 채 함께 길을 건너고 몸이 불편한 노인분들은 직접 업고 건네 드리기도 한다. 버스기사들도 할아버지의 부탁에 몸이 불편한 행인을 흔쾌히 무료로 태워준다.

능숙한 교통정리는 비단 오랜 경륜탓만은 아니다. 50년대 대전시 은행동파출소에 근무하며 교통정리를 담당했던 왕년의 실력이 밑바탕이 됐다.

"뱃지 달고 다림질로 날을 빳빳이 세운 제복을 입고 교통정리를 하던 그 때 경찰은 참 멋있었다" 며 자랑스레 말하는 金할아버지는 해병대 출신의 한국전쟁 참전 상이용사다.

반포파출소 명예경찰까지 맡아 새벽 3시부터 동네 순찰을 돌고 곧장 교통정리에 나서 때론 힘이 부친다는 할아버지.

매일 몇시간씩 자동차 매연 속에 서있다 보니 목이 나빠져 최근들어 이비인후과를 자주 찾기도 하지만 "내가 하는 작은 일로 사람들이 사고를 당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며 겸손해 했다.

글.사진〓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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