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경기침체와 고용불안 … 우울한 미국 연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현재는 실업급여로 버티고 있다. 주정부는 매주 초 스콧에게 390달러(약 46만원), 켈리에겐 268달러(약 32만원)를 지급한다. 월요일 700달러(약 82만원)를 찾은 그는 콜라와 담배 4갑을 사고, 자동차에 20달러(약 2만4000원)어치 기름을 넣었다. 밀린 집세 등으로 집주인에게 500달러(약 59만원)를 부치고 어린이 건강보험에 66달러(약 7만8000원)를 썼다. 그에겐 17세 아들과 2살 된 딸이 있다. 그러곤 맥주 가게에서 버드와이저 7잔을 마셨다. 남은 돈은 70달러(약 8만2000원)다.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람은 미시간주 잭슨에 사는 장모가 유일하다. 장모 집 지하에서 당분간 지내야 하지만 미시간주 실업률은 15%다.

금융위기 이후 이런 식으로 실업자 대열에 내몰린 미국인이 730만 명이다. 공공 분야라고 다를 게 없다. 예컨대 2~3년 전 2200억 통에 달하던 우편물은 1700억 통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인터넷이 확산되고 광고물이 급감해서다. 미 우정공사(USPS)는 우체통을 20만 개 이상 철거해 이젠 17만5000개 수준이다. 우표 가격을 올리고 1400명의 관리자를 해고했지만 적자가 불어나자 우체국 3200개 중 4분의 1을 조만간 폐쇄할 방침이다.

현재 미국인 6명 중 1명은 실업자거나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다. 미 언론엔 경기침체와 고용불안으로 우울한 서민들의 한숨 기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얼마 전부터 실업자 일기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조만간 개선의 여지도 크지 않다. 경기가 실제로 회복되면 구직자가 늘어나 실업률은 더욱 커질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상가엔 매기가 적다. 세일 폭이 가장 크다는 크리스마스 다음 날 워싱턴 인근 최대 쇼핑몰인 타이슨스 코너를 찾았다. 폭설까지 겹쳐 연말의 들뜬 분위기를 찾기 힘들었다. 몇 개월째 빈 점포도 여럿이다.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의 대형 수퍼마켓에서 물었더니 “매일 3000명 정도 고객 중 10명이 동전을 들고 와 물건을 사간다”고 말했다. 옛날엔 없던 일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크리스마스 선물 조사에선 실직한 아빠의 일자리를 선물로 부탁한 아이들이 많았다.

며칠 후면 2010년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은 모두 새해 국정의 제1 목표로 일자리 창출을 꼽았다. 힘찬 새해를 기대해 본다.

최상연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