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내년 예산을 발표하면서 성장과 분배를 고루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올해 복지예산을 늘리고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등을 줄인 것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예산안의 내용을 뜯어보면 '성장'을 강조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분배'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내년 나라살림(일반회계+특별회계+기금) 규모가 208조원으로 짜여 처음으로 200조원을 돌파한다. 올해(196조원)보다 6.3% 늘어난 규모다. 그러나 세금 들어오는 규모보다 돈 쓸 곳이 많아 나라살림은 내년에 8조2000억원의 적자를 내게 된다.
적자규모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다. 돈의 씀씀이가 커지다 보니 빚을 낼 수밖에 없어 내년에 나랏빚은 올해(204조5000억원)보다 크게 늘어난 244조2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내년도 일반회계는 올해보다 11조4000억원(9.5%) 늘어난 131조5000억원, 특별회계는 2조원(3.2%) 증가한 64조2000억원으로 확정됐다. 37개 사업성 기금의 사업비도 1조7000억원 늘어난 25조3000억원으로 결정됐다.
정부는 24일 국무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의 내년 예산안과 기금운용 계획안을 발표하고 다음달 2일까지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 성장 강조와 분배 확충=경제성장을 높이기 위한 예산을 올해보다 14.3%나 늘려 15조1000억원을 배정했다. SOC 투자는 1.7% 증가에 그친 가운데 무게중심이 도로에서 철도와 항만.공항 등으로 옮겨갔다. 인천국제공항에 2273억원이 투입되고 부산신항과 광양항에 각각 4482억원과 2735억원이 투자된다.
인력지원을 위해 보육투자비도 올해보다 50% 늘린 6000억원으로 확대한다. 분배 측면인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올해보다 10.2% 늘린 25조3000억원을 지원한다. 이 중 저소득층 생활안정 지원금이 10조4000억원으로 확대됐다.
예산증가율로 보면 분배예산이 늘어난 폭이 경제성장용 예산이 늘어난 폭보다 작다. 하지만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예산규모가 성장잠재력 확충에 들어가는 예산보다 10조원 이상 많다. 이 때문에 성장을 강조하지만 분배 쪽으로 무게중심이 좀더 쏠린 예산이라는 분석이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국가예산을 성장과 분배라는 이분법으로 보면 안 된다"며 "정부는 성장도 추진하고 분배도 원활히 하는 방향으로 예산을 책정한다"고 말했다.
◆ 문제는 나랏빚=경제발전과 복지확충에 이어 자주국방 구축, 지방분권.균형발전 등에도 예산을 비중있게 배정하다 보니 쓸 돈이 모자란다.
내년에 자주국방과 남북협력 증진을 위한 사업에만 22조원(11.6% 증가)이 투자돼 국방예산이 처음으로 20조원대를 돌파한다. 최대 40억달러(4조8000억원)가 들어가는 용산 미군기지 이전을 위해 내년에 우선 1000억원을 배정했다.
참여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지방분권.균형발전을 위해서도 36조1000억원(10% 증가)이 배정됐다.
이렇게 돈 들어갈 곳이 많다 보니 결국 정부는 빚을 낼 계획이다.
특히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공적자금 손실분 49조원을 국채를 발행해 메우는 중이라 나랏빚은 구조적으로 늘 수밖에 없다. 여기에 내년에만 6조8000억원의 적자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정부가 예상한 대로 내년 실질 경제성장률이 5%가 되지 않으면 세금이 덜 걷혀 빚을 더 내야 한다. 이런 추세라면 2008년에는 나랏빚이 296조원이 된다.
한양대 나성린 교수는 "나랏빚이 선진국과 비교해서 많지는 않지만 늘어나는 속도가 빨라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획예산처 김병일 장관은 "세금을 거둬 갚아야 할 나랏빚은 전체의 38%에 그치고 나머지는 외화자산과 융자채권 등을 갖고 있는 금융성 빚이라 우리의 재정능력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종윤 기자
◆ 일반회계=국가가 길을 만들고, 학교를 짓고 군대를 유지하는 등 기본적인 활동을 하려면 돈이 들어오고 나가야 한다. 이런 돈의 흐름을 정리한 정부 회계가 일반회계다. 국민이 국가에 내는 세금이 주요 세입(歲入)이 되고, 국가의 존립과 유지를 위한 기본적 경비가 주요 세출(歲出)이다.
◆ 특별회계=국가의 회계 중 특정한 세입으로 특정한 세출을 맡는 것. 정부가 특정사업을 운영하거나 특별자금을 보유하고 운용할 때 법률에 의해 특별회계를 만들 수 있다. 현재 양곡관리특별회계.에너지 및 자원사업 특별회계 등 22개의 특별회계가 있다.
◆ 기금=예산원칙의 일반적인 제약에서 벗어나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특정사업을 위해 보유하고 사용하는 자금. 국민연금기금.국민체육진흥기금 등 57개(운용 규모 320조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