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 발표한 소설가 박상우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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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카타콤.뭉크.Ω(오메가).록카페.사이렌….

박상우(42)씨가 새로 내놓은 소설집 '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 (문학동네.8천원)의 표제작은 세기말적 이미지들로 이어진다.

방황하는 젊은 영혼인 듯한 등장인물은 모두 이름이 없다. X라는 글씨가 새겨진 셔츠를 입은 남자는 그냥 'X' , 보랏빛 립스틱을 칠한 여자는 '보라빛 립스틱' 이다.

"1990년대를 그렸습니다. 80년대를 그렸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을 내놓고 10년간 세상의 변화를 지켜본 결과 인간이 파편화되고 정체성을 상실한 상태에서 광기에 휩싸여가는 모습을 봤습니다."

박씨가 본 세상처럼 소설은 악마가 광풍을 타고 지나가듯 차갑고 건조하다. 80년대의 꿈을 그린 '샤갈…' 에서 두 주인공은 손을 꼭 잡고 90년대를 기대했다.

그러나 '사탄…' 의 마지막 장면에선 음독한 여자를 구하려 달려오는 앰블런스의 사이렌이 재앙을 알리는 경고음으로 들린다.

작가는 이번 작품집에서 "3가지 글쓰기를 시험했다" 고 말한다. 첫째는 '사탄…' 처럼 시대의 악마성을 드러낸 것. 두번째는 악마의 시대에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던져보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들. 마지막은 새로운 글쓰기로 시도한 팬터지(환상성)의 수용이다.

"팬터지는 그동안 본격문학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환상이라는 요소는 문학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요소입니다. 인간과 삶이라는 주제의식에 환상성을 접목시키는 글을 앞으로도 계속 써보고 싶습니다."

작가는 아무래도 새로운 글쓰기에 더 무게를 둔다. 그는 88년 등단 이후 지금까지는 "등단 이전부터 품어왔던 구상들을 부화시켜온 과정" 이라며 선을 그었다.

'사탄…' 은 90년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글쓰기에 도전하는 작가의 꿈을 담고 있는 셈이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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