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통상협상 창구 재정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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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통상협상을 둘러싼 최근의 난맥상을 보면 우리의 대외협상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대(對)중국 마늘협상의 후유증이 채 수습되지 않은 판에 다시 쇠고기 원산지 문제를 놓고 부처간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다.

농림부·보건복지부가 음식점에서 파는 쇠고기에 수입산인지를 표시하려 하자 한덕수(韓悳洙) 통상교섭본부장이 공개적으로 "세계무역기구(WTO)협정에 위배된다" 고 문제삼고 나섰다. 이에 농림부 등은 다시 "지나친 확대해석" 이라고 맞서면서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어느 쪽 주장이 옳으냐를 떠나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국익에 직결된 주요 통상문제를 놓고 어쩌면 정부 내 조율이 이렇게 안 되느냐는 점이다.

문제가 있다면 조용히 머리를 맞대 협의하고 전문가들에게 자문해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해야지 이런 식으로 공개적으로 문제삼는 것은 곤란하다. 그것도 보안이 중요한 대외협상 전략을 놓고. 과연 정부 내에 자율조정기능이 있는지조차 의문을 갖게 한다.

연간 1천4백억~1천5백억달러를 수출하는 우리로서는 대외 통상은 국익에 직결되는 최대 현안 중 하나다. 통상교섭본부를 만든 것도 부처 전문가들과 협상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 효율적으로 국익을 보호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현실은 실망을 금치 못하게 한다. 부처간 정보교환이 제대로 안돼 협상이 엉뚱하게 돌아가고 아직도 협상 주도권을 놓고 신경전을 벌인다니 모두가 반성해야 할 문제다.

자기 부처 관심사에만 급급하는 부처이기주의도 시급한 해결과제다. 쇠고기 문제가 진짜 WTO 규정에 어긋나는데도 농림부가 국내 소비자만 생각해 강행하는 것이라면 잘못이다.

세계화 시대를 사는 우리로서는 범세계적 룰을 지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늘협상에서 소탐대실(小貪大失)한 결과가 어떤지 교훈을 얻지 못했는가.

반대로 외교통상부나 통상교섭본부도 대외협상에서 국익이나 내국인 보호보다 조용히 넘어가는 데만 급급하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韓본부장이 공개적으로 불만을 제기한 것도,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이해는 가지만 협상의 최고책임자로서 대외전략상 미숙한 일이다.

통상문제에 정치권 입김이 지나치게 개입되는 것도 경계해야 할 일이다. 특정 이해집단의 주장에 휘말려 국익에 더 손해를 주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협상 전문가 양성에도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각 부처에서 대외협상 분야는 선호도에서 밀린다. 이런 식으로는 대외협상에서 이길 수 없다.

돈이나 세금문제보다 대외협상이 국익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식, 전문가들이 이쪽을 찾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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