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곳 개원, 10곳은 건설 중 … 조지아주 159개 市마다 세울 것”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46호 08면

이건주(53·사진) 새희망병원 원장. 미국에서 의학 공부를 마치고 시골 오지의 공중보건의를 지원했을 때만 해도 영주권을 따는 게 목적이었다. 그러나 가난하고 소외당한 흑인들의 고통스러운 죽음은 그의 인생을 바꿔 버렸다. 고용 의사로, 개업 의사로 10여 년간 일하면서 이들의 마지막 길을 편안하게 해 줄 방법을 고민하면서다. 그가 조지아주에서 호스피스 병원을 세우는 프로젝트에 나선 이유다.

미국서 ‘호스피스 병원 프로젝트’ 이건주 원장

호스피스 병원은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환자들이 편안한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설이다. 적극적인 치료 대신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미국에선 의사로부터 6개월 정도의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사람은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연방정부가 병원 이용비 전액(하루 640달러)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원하는 사람은 많은데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춘 호스피스 병원이 없는 게 이곳의 현실”이라며 “조지아주 내 159개 시(카운티)마다 하나씩 호스피스 병원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지난해 회사(www.doctorshospiceofgeorgia.com)를 설립했다. 뜻을 같이하는 400여 명의 의사와 함께 자원봉사 조직도 만들었다. 이 원장은 이미 리버데일과 카터스빌 등 3곳에서 호스피스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또 다른 10곳에선 각각 병상 12개를 갖춘 나지막한 1층 병원 건물을 세우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방문한 리버데일 병원에서는 모자를 눌러쓴 흑인 할머니가 침대에 앉아 크리스마스트리 불빛이 반짝이는 복도를 쳐다보고 있었다. “편안해 보이시죠? 24시간 상주하는 의사와 간호사가 가래도 뽑아내 드리고, 통증이 심하면 진통제도 투여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열흘을 넘기기 어려우실 거예요.” 이 원장의 설명이다. 가족실에 가 보니 흑인 할머니 가족들이 모여 혹시 모를 상황을 준비 중이었다.

이 원장은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캐나다 토론토대와 미국 예일대에서 병리학·내과학 공부를 마쳤다. 1994년부터 3년간 조지아주에서도 외딴 곳인 하이와시 보건소에서 일했다. 조지아주는 KKK단(백인 우월주의 비밀 결사집단)의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곳이어서 흑인들의 삶이 특히 열악했다.

이 원장이 호스피스 프로젝트에 매진하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 제중원도 미국 선교 의사가 만든 겁니다. 미국 사람들이 건물도 짓고 신의학 기술을 전해 준 거지요. 미국의 낙후 지역에서 한국인 의사가 미국인들의 임종을 편안히 도와준다면 100여 년 만에 우리가 진 빚을 갚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원장은 건강보험 개혁과 관련해 “미 정부의 호스피스 지원은 갈수록 증가할 것이 틀림없고, 여기에 투자한 한국인은 영주권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