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남북한·미, 3자회담 과제는 새 평화체제 창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단숨에 한반도 정치.안보 지형을 바꿔놓았다.

물론 남북이 앞으로 걸어야 할 여정(旅程)은 굴곡이 많은 도로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남북이 그 도로를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같다.

문제는 서방의 한국문제 전문가 또는 정책 결정자들의 감각이 한국인들보다 늦어도 한참 뒤진다는 것이다.

서방 전문가들은 정상회담 결과에 놀랄 뿐 정작 정상회담 밑바닥에 흐르는 조류(潮流)와 힘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는 서방 분석가들이 한국인들의 독특한 정서를 파악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아무리 미워했던 사람이라도 극적인 장면을 통해 순식간에 화해하는 특질이 있다.

한국인들의 이런 중요한 특질을 간과했기 때문에 서방 분석가들은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 의구심 섞인 눈초리로 분석하고 있다.

정서적 특질뿐만 아니다. 대부분의 서방 분석가들은 평양이 수년간 트랙투(Track II)채널을 통해 외부로 보내는 신호를 간과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트랙투 채널이란 외교관과 공식 채널이 아닌 민간기관 및 개인 채널을 통한 비공식 외교를 일컫는다.

평양은 민간 채널을 통해 꾸준히 외교적 신호를 보내왔으며 이는 金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을 시작하는 촉진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한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한국의 김영삼(金泳三)대통령과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1996년 4월 공동으로 기존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를 위한 4자회담에 북한과 중국의 참여를 요청했다.

그러나 평양은 그로부터 거의 1년 뒤에 워싱턴으로부터 비공식 채널을 통해 '4자회담의 틀 속에서 3자회담 또는 2자회담을 개최하고 중국은 필요한 경우에만 참여할 수 있을 것' 이라는 메시지를 접수한 뒤에야 비로소 4자회담에 참여했다.

물론 여기서 3자회담은 남북한과 미국이 참여하는 회담이며 2자회담은 남북한 회의를 뜻한다(아이로니컬하게도 워싱턴은 평양에 대한 베이징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한 나머지 4자회담은 실패하고 말았다).

남북한간의 2자회담 1라운드는 지난달 15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포옹함으로써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서울과 평양간에 열릴 2자회담의 1차 문제는 '남북통일' 이 될 것이다. 2자회담의 핵심 목표는 남북이 그동안 주장해온 통일방안들이 지니고 있는 유사성에 주목, 모종의 남북연합 틀을 창출하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안보와 국방력은 지역정부가 관장한다. 남북한과 미국이 참가하는 3자회담의 1차 과제는 한반도의 군사적 충돌 방지와 정전협정을 대체할 새로운 평화체제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 회담의 핵심 목표는 휴전선상에 배치된 지상군의 단계적 후방 배치와 군사력 감축이다. 물론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이 수행하고 있는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역할은 당분간 계속돼야 한다.

야구경기에 비유하자면 남북한은 현재 정상회담을 통해 1루에 진출해 있는 셈이다. 앞에서 설명한 남북한 2자회담과 남북한 및 미국이 참여하는 3자회담은 2루와 3루에 해당된다.

남북이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홈베이스에 홈인할 때는 한국인들은 민족의 악몽인 분단을 역사의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평화통일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남궁권 재미북한 전문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