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마리 풀린 적십자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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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8.15 이산가족 상봉에 앞서 비전향 장기수를 먼저 송환하라는 북측의 요구로 기우뚱거리던 남북적십자 회담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북측이 29일 2차 남북 적십자회담에서 '8월초 비전향 장기수 송환' 요구를 '9월초 송환' 으로 변경했고,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원칙을 수용하는 등 두 가지의 진일보한 입장을 내놓은 때문이다.

9월초 송환 입장은 우리 정부의 '선 이산가족 상봉, 후 장기수 송환' 구상과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면회소 설치도 상봉의 정례화를 추진해 온 우리측이 강력요구해온 내용이어서 30일 회담의 가시적 성과를 예고했다.

북측 최승철 단장은 회담 중간에 "(북측이) 대폭적인 안을 내놓았다" 고 주장했다.

한 걸음 나아가 평양방송은 ▶8.15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비전향 장기수의 9월초 송환▶차기회담에서의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협의 타결 등 3개 항의 제안을 했다고 전격공개했다.

당초 정부는 북한이 '8월초 송환' 입장을 굽히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면회소 설치는 더더욱 선선히 응하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때문에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원칙을 북측이 수용하면 남측은 비전향 장기수 송환시기를 앞당겨 '8.15이산가족 상봉' 과 동시에 한다는 카드로 2차 회담에 임했었다.

그러나 예상 외로 북측이 선(先)장기수 송환 요구를 철회하고 면회소 설치 원칙을 받아들임으로써 꼬여온 회담이 전기를 맞은 것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면회소 설치는 생사.주소확인 절차가 뒤따라야 하는 만큼 사실상의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의미한다" 고 설명했다.

반면 우리측은 비전향 장기수 50여명의 전원 송환이라는 안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2~3명의 '시범송환' 을 거론하던 데서 나아간 것이다.

남한 내 1백2명의 장기수 중 북송을 원하는 사람들은 59명선. 박재규(朴在圭)통일부 장관도 "북송을 원하는 장기수는 송환할 것" 이라고 밝혔다.

결국 북측은 '비전향 장기수 전원 송환' 의 명분을 갖게 돼 "개방에도 불구하고 지킬 것은 지킨다" 는 체제유지 홍보가 가능해졌다.

우리측은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라는 실리를 얻게 돼 주고받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다만 북한은 국군포로를 이산가족 범주에 포함시키자는 우리 요구에는 여전히 거부감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목에선 막바지 진통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 관계자는 "상대가 있는 만큼 우리도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하는 것 아니냐" 며 남은 쟁점은 다음 회담으로 넘길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극적 타결에 이어 나머지 쟁점도 양측이 후속회담을 통해 합의점을 마련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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