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욕] '밸러딕토리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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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국 고교들이 졸업시즌을 맞은 가운데 졸업생 대표로 고별사를 읽는 한인 학생들의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나 한인동포 사회에 큰 자부심을 안겨주고 있다.

미국에서 졸업 고별사를 낭독하는 학생, 즉 '밸러딕토리언(Valedictorian)' 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졸업생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낸, 쉽게 말하면 수석졸업생이다.

더구나 단순히 졸업 성적이 가장 좋다고 해서 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공부를 잘 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스포츠와 자원봉사, 친구들과의 우애 등 모든 면에서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아야만 한다.

미국 교육이 추구하고 있는 '전인교육(全人敎育)' 의 목표에 가장 합당한 학생이 차지하는 영광인 것이다.

예컨대 교내 급식을 하는 미국 학교에서 편식하는 학생은 후보 축에도 못낀다.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지 않는 학생이 신체적으로 결코 건강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만큼 까다롭다.

그런데도 올해 로스앤젤레스 북쪽 밸리 지역의 공립고교들에서 밸러딕토리언으로 선정된 3백62명 가운데 한인 학생이 38명에 이른다.

미 동부지역도 사정은 비슷해 동포 신문에는 자랑스런 한인 밸러딕토리언들의 기사가 연일 실리고 있다. 한인 학생들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건 그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최우수 고등학생을 의미하는 '대통령 장학생' 에도 한인 학생들이 5명이나 뽑혔다.

대통령 장학생은 미국 전체를 통틀어 1백41명에 불과하다. 그 중 3.5%를 한국인이 차지한 것인데 인구 분포로 따져보면 놀라운 성과다.

또 전국 수학.과학 경시대회 등 각종 경시대회를 휩쓰는 것도 한인 학생들이다. 한인 학생들의 이같은 성공 배경엔 부모들의 눈물겨운 교육 열기를 빼놓을 수 없다. 한인들의 교육열은 미국인들도 혀를 내두르는 유대인에 뒤지지 않는다.

한인 동포들은 "이민 1백년 만에 금자탑을 쌓았다" 고 즐거워한다. 그러나 한인 사회는 이같은 금자탑이 최근 한국에서 밀려 들어오는 조기 유학 붐으로 인해 빛을 잃지나 않을지 걱정한다.

미국내 일부 고교는 "학습 자세가 갖춰져 있지 않은 한국 조기 유학생들이 분위기를 해친다" 며 입학 사정을 대폭 강화하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교포 2세, 3세들이 밸러딕토리언에 대거 선정된 것은 교육을 통해 미국 사회에 적응하려는 한인 부모들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고 업적이다. 미국 사회에서 한인들의 미래는 그만큼 밝은 것이다.

신중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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