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화제작 '느리게 산다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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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빠른 것이 미덕인 디지털 시대엔 오히려 '느림' 이 화두다. 모든 것이 빨리 돌아가고 조금이라도 늦으면 뒤쳐질까봐 불안해하는 현대인들에게 뒤를 돌아볼 기회를 주는 것이 '느림' 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큰 화제를 모았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피에르 상소 지음.김주경 옮김.동문선)역시 '느림' 의 가치를 일깨운다.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저술가 상소가 쓴 이 책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앉아 휴식할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한다' 는 파스칼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무슨 활동이건 간에 쉬지 않고 움직인다는 것을 고귀한 가치로 삼는 오늘날 상소의 표현대로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주위를 곤란하게 하는 골칫거리로 비난받기 쉽다.

이런 나쁜 평판을 알면서도 상소는 '점점 더 빨리 달려가는 시간의 재촉에 떠밀리지 않기로 했다' 며 느림의 삶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잠깐만 하던 일을 멈추고 생각해 볼 시간 갖기' 를 제안한다.

사실 일상의 쳇바퀴를 굴리며 사는 사람들은 어쩌다 짬이 나도 도무지 생각이라는 걸 하지 못한다.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란 그저 물리적인 시간이 존재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이제 '느림의 자유를 한번 느껴보라, 그리고 자신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라' 고 조용히 외친다. '언제부터 나는 내 운명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는지' '내 몸을 신체의 본능에 맡길 권리를 다시 찾고 싶지는 않은지' 말이다.

상소가 '느림' 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제시한 방법은 '한가로이 거닐기' 와 '듣기' '권태를 즐기기' '꿈꾸기' '기다리기' '마음의 고향 떠올리기' '글쓰기' '포도주 한 잔에 빠지기' 등 듣기만 해도 나른해지는 목록들이다.

저자의 정의에 따르면 '듣기' 란 나의 육체가 하는 말에 귀기울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곧 내가 아닌 타자에게 몰입하는 것이다.

'빠름' 을 가능하게 한 인터넷은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듣는 일로부터 멀어지게 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터넷 상에서는 정보 교환만 가능하지 감정 교환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런 인터넷 시대에서야말로 듣는다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기다리기' 역시 마찬가지다. 인터넷은 귀찮은 기다림도 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모두를 혼자로 만들었다. 내가 원하거나 선택한 대상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인내심은 더이상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권태' 는 우리가 흔히 아는 일상을 우습게 보는 권태가 아니다. 할 일이 없을때 만족스러운 하품을 할 수 있는 그런 권태다.

상소의 '느림' 에 관한 사색에서 알 수 있듯 느림은 민첩성이 결여된 둔감한 행동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모든 행동이 다 중요하며 불필요한 계획에 이리저리 정신을 빼앗기지 않고 명예롭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삶의 선택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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