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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명품숍 새 큰손으로 나우족·30대 남성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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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감각적인 패션을 선호하는 40~50대 여성을 겨냥해 올봄 출시된 여성 의류 ‘르베이지’ 매장. 꽃무늬나 원색 대신 단색 의류를 선보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제공]

23일 신세계백화점 서울 강남점 3층 여성복 매장. 베이지나 검정, 회색 같은 단색 의류가 진열된 ‘르베이지’ 매장에서 중년 여성들이 옷을 고르고 있다. 제일모직이 ‘나이든 여성은 꽃무늬나 원색을 좋아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올 봄 중장년 여성을 겨냥해 선보인 브랜드다. 이 백화점에서 여성정장 매출 1위다.

2000년대 초반까지 고급 여성복은 디자이너 부티크(패션점)의 전성기였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서면서 디자이너 매장은 백화점에서 줄어드는 추세다. 신세계 강남점에서 올해만 앙스모드·마담포라 같은 디자이너 부티크 네 곳이 매장을 정리하는 등 2~3년 새 15곳이 철수했다. 올 7월 이 백화점은 디자이너 부티크 공간을 30% 줄인 대신 ‘뉴 어덜트 존’을 만들었다. 르베이지를 비롯해 미스지·앤디앤뎁·쁘렝땅·보티첼리 같은 브랜드로 채운 공간이다. 조용현 디자이너 의류바이어는 “전통적인 ‘아줌마’이기를 거부하고 젊은 패션감각을 추구하는 중년 여성이 늘면서 여성복 매장에 변화를 줬다”고 말했다.

백화점 매장은 늘 그대로가 아니다. 봄·가을 매장을 개편하면서 매출이 부진한 브랜드는 내보내고 고객을 끌 만한 제품을 새로 들여온다. 신세계백화점에 어떤 상품이 들고났는지를 통해 라이프 스타일과 소비 트렌드를 분석해 봤다. 

① 나우족(NOW: New Older Women)의 힘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식품관 델리 매장에서 고객들이 음식을 먹고 있다. 백화점에서 식사를 해결하는이들이 늘면서 ‘이트 인(eat-in)’ 형태로 탈바꿈했다.

뉴 어덜트 존에 입점한 의류의 특징은 30대 여성용과 중장년층을 겨냥한 옷을 구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젊은층 못지않게 감각적인 스타일을 좋아하는 새로운 중년 여성상인 나우족의 취향을 반영해 제품을 내놓기 때문이다. 이들 브랜드는 같은 사이즈라도 일반 여성의류보다 한 치수 크게 제작해 중년 여성들이 편하게 입을 수 있도록 했다. 체형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디자인도 갖췄다. 과거에는 고급 여성복은 으레 투피스였지만,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롱재킷과 롱브라우스가 불티나게 팔린다. 신세계가 이달 10일까지의 올 매출을 집계했더니 디자이너 부티크 브랜드의 평균 매출은 지난해보다 10%가량 줄어든 반면 뉴 어덜트 존에 있는 브랜드들은 10~15% 성장했다. 이런 경향을 반영해 이 백화점은 올 4월 미국·프랑스·영국에서 수입한 시티 캐주얼 컨셉트의 의류를 모아 중장년층 여성을 겨냥해 편집매장도 개설했다.

② 남성용품 매출 급증

신사정장이나 와이셔츠를 취급하던 데서 벗어나 시계·지갑 등 잡화까지 한곳에서 살 수 있도록 한남성 전문 편집매장. 30대 남성이 주 고객이다.

신사 정장과 와이셔츠, 넥타이가 즐비했던 남성 매장은 캐주얼 의류와 잡화를 한데 모은 토털 매장으로 변하고 있다. 신세계는 올 3월 시계·지갑·만년필에서부터 셔츠·속옷에 이르기까지 남성패션 상품을 한곳에서 고를 수 있는 편집매장 ‘맨즈 스타일 플러스’를 충무로1가 본점 7층에 구성했다. 홍정표 마케팅팀장은 “1990년대 중후반 학번의 남성들이 30대 초중반의 직장인이 됐고, 결혼도 늦어지면서 30대 남성은 어떤 세대보다도 가처분 소득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체 남성 매출에서 30대 남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6년 29.6%에서 올해는 43%로 늘었다.

30대 남성은 명품 시장에서도 큰손이 됐다. 제냐·휴고보스 등 남성 명품의 매출은 지난해보다 40% 증가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백화점은 30대 남성을 공략하기 위한 전문숍을 늘리고 있다. 신세계에서만 최근 2년 새 남성 명품 브랜드가 50% 가까이 늘었다. 과거에는 전문직 종사자가 주로 명품을 샀지만 요즘은 회사원이나 예비 직장인으로까지 넓혀지고 있다. 신세계유통산업연구소 하익성 과장은 “‘몸짱’ ‘꽃미남’ 같은 용어가 유행하듯 남성 외모도 여성만큼 중요하게 인식되는 사회 분위기에다 젊은 남성들의 가치관과 라이프 스타일이 변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③ 백화점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싱글족

매장에서 조리하는 델리 매장 종류를 다양화하고 모든 델리 매장에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자리가 생겼다. 이른바 ‘이트 인(eat-in)’ 형태다. 테이크아웃 제품으로 100g 단위로 사갈 수 있는 소용량 식품을 늘리고 국·탕류를 즉석 조리해 파는 매장도 갖췄다. 이는 싱글족과 딩크족(아이 없는 맞벌이 부부: Double Income, No Kids)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간식을 넘어 끼니를 백화점에서 해결하는 이들 때문에 예전에는 양식이 대부분이던 델리 매장에 나물쌈말이·배 연근 샐러드·호두현미밥 샐러드 같은 한식 메뉴도 등장했다.

④ 문화센터 강좌는 남성 요리로 진화

백화점 문화센터는 당시에 유행하는 강좌를 개설하기 때문에 소비 트렌드를 읽는 수단이 된다. 90년대 초반까지 꽃꽂이·지점토 공예 등 주부 대상 취미 강좌가 대다수였다. 90년대 중반 들어서는 볼링이나 당구 같은 스포츠 강좌와 아동 및 유아 강좌가 집중 개설됐다. 외환위기가 닥친 97~99년에는 생활에 도움이 되는 손뜨개나 미용 등 부업용 창업 아이템이 등장했다. 2000년대 들어서자 인터넷 강좌가 인기였다. 2005년 이후에는 주 고객층으로 떠오른 50~60대를 잡기 위한 시니어 강좌가 늘었다. 건강·재테크 강좌와 메이크업 강좌가 대표적. 필라테스, 요가 등 운동 강좌가 많아지면서 직장인들까지 백화점 문화센터를 찾았다. 지난해부터는 남자를 위한 요리 강좌, 갤러리를 찾아가는 미술감상 강좌가 신설됐다.

⑤ 날씨 마케팅 지고 온라인 행사 뜨고

예전 백화점에서는 대형마트에서처럼 일정 시간 동안 파격적인 가격에 제품을 파는 타임 서비스 행사가 열리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시장처럼 시끄럽고 사람이 몰려 백화점의 격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하지 않는다. 10㎜ 이상 비가 오면 사은품을 준다거나 첫눈이 오면 할인해 주는 식의 날씨 관련 행사도 자취를 감춰가는 분위기. 백화점들이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갖추려고 애쓰면서 사계절 상품전, 팔도 물산전, 대바자 같은 행사도 잊혀 간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00% 당첨 카드센싱 사은품 행사가 열렸지만 최근엔 온라인쪽 행사가 활성화되고 있다. 상위 10~20% 고객이 백화점 전체 매출의 80~90%를 올려주기 때문에 고급 매장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집중한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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