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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한가위 극장가] 할리우드 영화가 지겹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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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추석은 대형 블록버스터 오락영화 틈바구니 속에서 유난히 예술영화가 많이 눈에 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30일까지 열리는 '베니스로 떠나는 영화 배낭여행'을 권할 만하다. 베니스 영화제 역대 수상작을 한데 모아 선보이는 작은 영화제로, 2002년 황금사자상을 받은 피터 뮬란 감독의 '막달레나 시스터즈'등 6편을 매일 시간대를 달리해 상영한다(상영시간은 www.cinecube.net 참조). '막달레나 시스터즈'는 너무 예쁘거나 못생겼다는 이유로, 또는 너무 똑똑하거나 멍청하기 때문에, 아니면 미혼모이거나 강간당했다는 죄로 수녀원에 갇혀 노예 같은 생활을 강요받는 여자들 얘기를 그렸다. 이 밖에 탈옥수 등 네명의 여자가 차도르를 벗고 골목을 누비며 도망치는 모습을 통해 이란 여성의 힘겨운 삶을 담아낸 '서클'(자파르 파나히 감독.2000)과 운명으로 얽힌 연인들의 비극적인 사랑을 담은 '비포 더 레인'(밀코 만체프스키 감독.1995)도 그랑프리인 황금사자상 수상작들이다. 이 밖에 1999년 감독상을 받은 에밀 쿠스트리차의 축제처럼 유쾌한 영화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에릭 로샹의 '동정 없는 세상'(1998), 프레데릭 폰테인의 '포르노그래픽 어페어'(1999)처럼 국내 개봉돼 이미 화제를 모았던 영화들도 상영된다.

그런가 하면 올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의 '빈 집'을 먼저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있다. 다음달 전국 상영에 앞서 서울 동숭동 하이퍼넥 나다에서 30일까지 매일 오후 5시15분 한차례 상영하는 것. 하이퍼텍 나다는 '빈 집'과 함께 올해 칸 영화제 개막작 '나쁜 교육'(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과 2003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감독상 수상작 '엘리펀트'(구스 반 산트 감독)도 시간대를 달리해 상영한다.

영화제 수상작은 아니지만 할리우드 영화와는 다른 색깔로 관객을 유혹하는 영화도 있다. 비제의 오페라로 더 유명한 프랑스 작가 메리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카르멘'이다. 오페라를 영화로 옮긴 음악영화가 아니라 소설을 차용한 드라마다. 한편의 그림같은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도 추석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여성의 관점에서 도발적인 성담론을 펼쳐온 카트린 브레야 감독의 '섹스 이즈 코미디'와 '팻걸'(씨네큐브)도 주목할 만한 영화다. '섹스 이즈 코미디'는 두 자매의 첫경험에 관한 환상을 다룬 '팻걸'의 메이킹 필름 형식을 취하고 있다. 브레야 감독의 분신인 여감독 잔이 벗기 싫다는 배우들을 협박하고 달래서 정사신을 촬영하는 이야기를 통해 노출에 지나치게 민감한 영화계와 관객 모두를 풍자하고 있다. 가짜 성기를 달고 세트장을 돌아다니는 남자 배우를 보며 "가짜면 예술이고 진짜면 외설"이라는 잔의 독설은 우리 영화계에도 그대로 적용돼 의미심장하다. 실제로 남자 성기가 오래 등장하는 '섹스 이즈 코미디'는 가짜라는 설정 덕에 18세 관람가 판정을 받았고, 여성 체모가 잠시 나오는 '팻걸'은 실제라는 설정 탓에 첫 심의에서 제한상영가를 받은 바 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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