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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개발계획에 땅값 들썩이는 해남 현지 르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전남 해남군 산이면에 들어서면 두번 놀란다. 우선 좌우에 펼쳐지는 풍광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구릉지대를 보면 흡사 여기가 한국인가 하는 의심이 든다. 어디를 가도 산 뿐인 우리나라에 이런 구릉지대도 있었나 하고 되뇌인다. 여기에 면을 남북으로 둘러싼 금호강과 영암호를 더하면 유럽의 어느 휴양지 못지 않다.

▶ 산이면 대진리 주민 오주환(60)씨가 골프장이 들어설 마을앞 들을 가리키고 있다.

▶ 산이면에는 부동산 소개소가 최근 8곳이나 생겼다.

다음은 곳곳에 걸린 '땅 파실분을 찾습니다, 전화:000' '땅 파실분 환영,전화:000'와 같은 홍보문구다. 마을 담장,전봇대,게시판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곳곳에 붙어있다. 면사무소 주위에는 커다란 플랙카드가 걸려있다. '불법토지거래신고센터 전화:000'

땅을 살려는 사람과 이를 단속하려는 관청, 서로에 대한 선전포고(?)다.

두달전쯤 정부는 해남지역에 대규모 휴양시설건설 허가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몇일전에는 해남과 인접한 영암지역에 기업형도시를 고려중이라는 발표를 했다. 전남도와 해남군이 이같은 기회를 놓칠리 없다. 해남도는 최근 외국의 투자자들을 산이면으로 초청해 관광레저도시 후보지에 대한 자세한 소개를 했다. 면적은 약 3000만여평. 이중 1000여만평이 골프장으로 집중 개발되고 나머지는 카지노, 실버타운,호텔등이 들어선다는 내용의 브리핑도 했다. 전남도청은 대부분 외자를 유치해 건설하겠다는 계획이고 이곳을 찾은 미국의 유명 투자펀드 몇곳이 투자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것으로 알려졌다.

인접한 화원면은 전남도의 자체개발계획에 따라 모 건설사가 컨소시엄을 형성 이미 골프장건설을 시작했다. 확정되진 않았지만 장기적으로 108홀 규모의 골프장이 들어설 것이라는 게 해남군의 설명이다.

면소재지에 도착하자마자 면소재지 옆에 있는 '산들바다 공인중개사무소'를 찾았다.

사무실은 갓 개업한듯 새 집기로 단장했다. 바닥도 책상도 깨끗했다. 이승원 전무는 "7월말에 개업해 지역 토지거래는 주로 목포지역 소개소에서 담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재경부 발표이후 두달여만에 소개소는 8곳으로 늘었다. 앞으로 얼마나 늘어날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 전무는 분당에서 부동산소개소를 했던 사람이다. 두달전 해남지역에 관심이 있어 이곳으로 내려와 소개소를 열었다. 부동산 거래도 거래지만 자신이 적법한 투자를 해보고 싶은 목적이 더 컸다.

두달여 동안 토지거래 실적을 물었다. 그는 "단 한건도 없다"고 답했다. 이유가 궁금했다.

"재경부 발표가 있으면서 산이면 일대는 곧바로 토지거래허가지역으로 지정됐죠. 따라서 외지인은 임야 600평, 전답 300평,대지 150평 이내의 땅만 매입할 수 있어요. 보시다시피 이곳은 구릉지대라 땅들이 다 넓어요. 쪼개서 팔수 없지요. 더구나 주민들이 더 오를 것을 예상하고 물건을 아예 내놓지 않습니다. 눈을 씻고 봐도 없다니까요."

실제로 2년여 전부터 이곳이 개발된다는 정보를 접한 외지인들이 하나둘씩 몰려들어 현재 개발예정지역 토지의 40%는 외지인 소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소개소를 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도 기다려 봐야죠. 휴양지로 개발되면 다른 일도 있겠지요."

그와 애기하는 사이 외지인듯한 사람 두어명이 들어와 다른 직원과 상담하고 돌아갔다.

"재경부에서 발표하고 토지거래허가지역으로 묶이기 전 20여일의 공백이 있었는데 그때 이루어질 거래는 다 이뤄졌지요. 지금 손님들 찾아오는데 땅사기 힘들겁니다."

그는 하루에도 줄잡아 10여명 정도는 소리나지 않게 찾아와 개발계획을 묻고 투자할 만한 곳을 돌아본다고 귀뜸했다.

사정이 이러니 평당 2만원 내외였던 땅값(전답기준)은 현재 6만원을 준다해도 팔려는 사람이 없다.

농민들 반응이 궁금해 곧바로 골프장이 들어설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산이면 대진리를 찾았다. 마침 마을 어른인 오주환(60)할아버지가 농사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중이었다.

-마을 앞에 골프장이 들어서면 좋지 않을까요.

"모르는 소리 마슈. 골프장으로 수용되면 공시지가로 보상이 되는데 뭐가 좋겠수. 농지가 수용되지 않는 바로 옆마을만 좋을일 났지."

-그럼 주민들은 반대한다는 뜻인가요.

"둘로 나뉘었소. 옆에 땅이 있는 사람은 적극 찬성이고 농사밖에 모른 사람들은 어디로 가냐고 난리요."

-주민들이 골프장등 휴양시설에 취업할 기회가 그만큼 많아질텐데요.

"평생 농사만 짓는 사람이 무슨 취업은 취업. 그리고 이상한 술집들어오고 난리일텐데 아이들 교육에도 좋을리가 없지."

-할아버지는 땅을 많이 갖고 계시나요.

"좀 있지. 저번에 팔아서 아쉬운대로 빚은 갚았어. 근데 출가한 애들이 전화하고 그래. 아버지가 돈이 생길듯 하니까. 지금도 벼농사 배추농사 지어 년 5000만원 소득을 올리는데 수용되고 나면 걱정이야. 뭘해먹고 살아야 하는지 원."

인터뷰 도중 옆에 서있던 이마을 주민 김영동씨(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부의장)가 말을 받았다.

"정부에서 계획이 확정되고 그 사실을 알려오면 전체 주민의 뜻을 물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근 지사리 마을 주민들의 반응은 달랐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농민은 "솔직히 마을사람 대부분이 들떠있다. 너무 들떠있어 걱정이다. 떼돈을 번다는 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있나"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특히 외지에 나간 청년들이 최근 몇개월 사이 고향으로 돌아온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귀뜸했다.

마을을 나오는 길에 서울번호판의 그랜져 XG차량이 마을 어귀에 멈춰섰다. 운전자에게 땅을 사러 왔느냐고 물었더니 대뜸

"팔 땅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운전자는 "어제 내려와 해남에서 자고 일대를 둘러보고 있는데 나온 땅이 없어 소개소에 연락처만 남기고 직접 돌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해남=최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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