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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전 치닫는 의사 폐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의사들의 집단 폐업 사태가 자칫 장기화할 조짐이다.

의사협회는 23일 정부의 대책안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 고 평가절하했다.

종전과 달라진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의협은 대한민국 의사 일동 명의의 투쟁결의문을 통해 "정부의 한심한 현실 인식에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고 했다.

정부 대책이 나오기 전보다 오히려 더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하는 분위기다.

의협에서 마라톤 회의를 벌이고 있는 지도부는 일단 초강경 자세다. 의협 회원들을 상대로 찬반투표를 할 필요도 없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발표자가 보건복지부장관에서 총리로 바뀐 것 외에 달라진 게 없다" 고 했다.

게다가 "최후 통첩…" 이라고 한 데 대해서도 "이미 잃을 만큼 잃었고, 갈 데까지 갔다" 며 투쟁열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이같은 조짐은 대책이 나오기 전부터 감지됐다.

김유배(金有培) 청와대 복지노동수석과 김재정(金在正)의협 회장.의권쟁취투쟁위원회 신상진(申相珍)위원장이 23일 새벽 시내 모처에서 극비 협상을 했다.

의협측은 두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의약분업 시행 전 약사법을 개정하라고 요구했다.

분업 시행을 미루고 시범사업을 하든지, 보완하든지, 아니면 당분간 일본식으로 원하는 병.의원과 약국만 임의로 분업을 하자고 했다. '선(先)보완 후(後)시행' 하자는 것이다.

둘째, 차흥봉(車興奉)복지부장관의 해임을 요구했다. 승리의 모습을 갖추기 위한 것이다.

金수석은 이에 대해 일정기간 시행한 후 약사법을 개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선 시행 후 보완' 이다. 그리고 장관 해임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했다. 金수석은 고위 당정협의회를 앞두고 마지막 조율절차를 거쳤으나 종전 입장만 재확인한 셈이다.

결국 당정협의회에서 나온 대책은 의협이 요구한 두 가지 조건을 담지 못했다.

달라진 점은 ▶3~6개월 후 일부 약의 대체조제 금지▶의대 정원 동결▶수가인상 및 체계개선안 9월 말까지 마련▶동네약국 제도개선 및 지원방안 마련 등 네가지다.

나머지는 폐업 하루 전인 지난 18일 관계장관 대책회의에서 나온 것들이다.

의협 관계자는 "진료권이 핵심이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약사법을 개정하자는 핵심 요구사항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마당에 다른 대책이 뭐가 필요하느냐" 고 반문했다.

정부는 의협이 수용을 거부한 이상 ▶의협 및 의쟁투 지도부에 대한 사법처리▶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한 의원에 대한 처벌▶전공의 입영조치 등의 강경대응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고위 관계자도 "더 이상 대화를 할 필요를 못느낀다" 고 말하고 있다.

이 경우 의협에 보조를 맞추기로 한 전국 62개 의대 교수들이 즉각 진료를 중단하기로 돼 있어 상상하기 힘든 의료공백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런 가운데 의협 내부에서는 외부로 나타난 강경 분위기와 달리 온건한 흐름도 감지되고 있다.

의협 상임이사진을 중심으로 "이만하면 된 것이 아니냐" 는 의견이 개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서 물러서면 안된다" 고 주장하는 의쟁투 중앙위원들과 내부 조율에 진통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논의 결과에 따라서는 주말과 휴일을 고비로 극적인 타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정부에 대한 젊은 의사들의 불신인데, 이를 해소할 '특별한 보장' 이 나오면 국민 생명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의사들이 입장을 바꿀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신성식.기선민.구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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